시 35:13
나는 그들이 병들었을 때에 굵은 베 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至于我, 當他們有病的時候, 我便穿麻衣, 禁食, 刻苦己心; 我所求的都歸到自己的懷中.)
'至于我'는 나에 관해서는, 나로 말하면.
當 마땅할 당
刻苦 애써 노력하다.
12절 그들은 나을 향하여 악으로 나의 선을 갚아 나의 영혼이 외롭게 되었다.
다윗에서 있어서 그들은 사울 왕이거나 다윗의 아들 압살롬일 것이다.
그들의 생각이나 방법이 어떻든 다윗의 시를 보면 그들이 병들었을 때에 자기 일처럼 기도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굵은 베 옷을(穿麻衣)
산양(염소)의 털로써 짠 검은 천의 옷. 이는 값이 싸고 질겨 목동들이 즐겨 착용하나, 죽은 자에 대한 애도 (삼하 3:31), 통회의 표시(왕상 21:27)등으로 입기도 하였다.
금식하여(禁食)
구약에서는 주로 죄에 대한 회개(삼상 7:6), 슬픔을 표현(삼하 1:12)할 때 행하여졌다.
금식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의 허물을 회개하고, 구원의 손길을 바라는 간절한 기도이다.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기도(求)
'청하였던'
1) 창 18:30"아브라함이 또 아뢰어(求) 이르되 거기서 사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사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 대해 하나님과의 대화중에 여섯번의 간구하는 중에 네 번째와 여섯 번째에 구하는(求) 단어가 나온다. 넓게는 소돔을 위하여 좁게는 그는 자신의 조카 롯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청한다.
그런 하나님께서는 창 19:29 '소돔과 고모라를 엎으시는 중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記念)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 내어 보내셨다'라고 말씀하신다.
'생각하사(記念)'는 '기억하다', '마음에 두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간구에 그의 중보기도에 응답하심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중보기도가 무조건적으로 응답 받는 것은 아니다.
믿음의 부모가 자녀를 위하여 간절히 끊임없이 중보 기도하는 것을 우리는 주위에서 자주 본다.
그 기도가 응답 받기 위해서는 당사자들도 신앙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간절히 기도한다면, 그동안 부모가 쌓아놓은 기도가 있기 때문에 그들은 생각보다 모든 기도의 응답을 빨리 받을 수 있을 것이다.
2) 왕상 3:5"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求)."
솔로몬은 일천 번제를 드렸다.
꿈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구하는 것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이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희생 제물을 기쁘게 받으셨음을 뿐만 아니라 솔로몬도 하나님께 부합된 간구를 할 준비의 마음을 보셨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 기도는 우리 편에서 우리의 의지로 하나님께 구하는데 솔로몬에게는 하나님이 친히 그의 꿈에 나타나시어 그에게 가지고 싶은 것을 구하라 말씀하심을 볼 수 있다.
9절에 보면 그가 구하는 것은 '듣는 마음'을 구한다.(옛날성경에는 지혜로운(智慧) 마음을 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중국 성경에도 지혜(智慧)로 되어 있다.
'지혜(智慧)'는 듣고 순종하는 마음. 듣고 이해하는 마음, 그러므로 참된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이해하고 온전히 순종함에 있다.
그의 간구를 보면 자신의 욕망보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을 구하는 모습은 우리가 본받을 만하다.
3) 왕상 18:42"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끓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
갈멜산에서 그의 간구로 하나님이 응답 하심으로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번제물을 태우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로 엘리야는 우상을 타파하였을 뿐만 아니라 양다리 걸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확신을 준 사건이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섬김의 자세와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심을 증명한 엘리야는 이제는 비가 내리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그의 간절한 기도의 모습이 전해진다.
4) 시 27:4"내가 여호와께 바라는(求)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尋求)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求問) 그것이라."
다윗의 하나님을 향한 그리움과 사랑이 묻어나 있다.
그는 하나님을 사모하므로 그가 구하는 한 가지 그것은 영적으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원함과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열망을 말한다.
다윗은 세상의 모진 풍파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에 구체적으로 역사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체험한다. 언제 어디서나 함께 하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은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반석이시며 피난처 되심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자신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걸어갔던 다윗의 전적인 하나님의 신뢰를 볼 수 있다.
'구하리니(尋求)'는 '추구하다', '원하다'의 의미로서, 절대적 목표를 향해 자신의 모든 노력을 경주하며 달려 나가는 것을 뜻한다.
다윗은 고통과 어려움과 괴로움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의 삶이 힘들었음을 오죽하면 원수 앞에서 밥상을 차려 주시고라고 기도하였을까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대적들의 아픔과 고통을 알기 때문에 그들을 기도하여 줄 수 있는 기도자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고 그렇게 하므로 신약적으로 그들이 그 기도를 받지 아니하면 그 기도가 내게로 돌아옴을 말하고 있다.
되돌아오는 기도 때문에 우리는 우리를 해하는 자라도 하나님 앞에 나쁘게 기도해서는 안된다.
때로는 그들로 오는 나쁜 상황이 내게는 기회가 되어 그 상황이 역전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쁘고 힘든 상황을 두려워하거나 억울해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의외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핵심이 될 때도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 생각된다면 감사함으로 받고 기도로 풀어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