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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 12:26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by YEOLBI 2022.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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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2: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服事) 나를 따르라(跟從)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服事)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尊重) 여기시리라.

 

 

왜 주님이 계신 곳에 섬기는 자가 있는가!

주님이 계신 곳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평안이 있고 영생이 있고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주님이 계신 곳이 천국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계신 곳에서 주님을 섬기는 것이다.

 

시 16:11"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다윗은 영원한 생명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알았다.

이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들이 갖는 즐거움은 세상에서 잠시 누리는 즐거움 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것임을 안다.

그는 이것을 확신하였기에 삶의 무진 풍파 속에서도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고 견디며 끝까지 소망을 바라보았고,

믿음의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얻는 영원한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신앙을 지켰다.

 

불신자들은

요 7:34"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시니, "

하나님의 말씀에 소홀하였던 사람들,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 믿노라 하면서 자기 멋대로 믿음 없이 행하는 자들, 주의 생명의 길을 보지 못한자들, 그곳에 기쁨과 즐거움이 영원함을 보지 못한 자들, 그들에게는 오직 심판만이 기다린다.

(출 14:12)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을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았다.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실 때에 그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에 있었다.

출애굽하고 뒤쫓아오는 애굽 군대를 보고 두려워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애굽인을 섬기는 것이 더 낫다고 얘기한다.

출애굽 하자마자 부딪치는 어려움에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어떤 인생이든 역경과 어려움은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더 쉽게 이 역경을 이기고 승리하는 것이다.

주님 믿는 자에게만 있는 인생의 고비가 아니다. 세상 사람들도 어려움을 겪는다.

문제를 자신에게서 보지 못하고 남에게서 찾으려는 어리석은 생각과 행위이며 우리는 오직 주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대로 행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섬기려면(服事)

 

1)  창 29:20"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服事)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외삼촌의 속임으로 야곱은 라헬을 얻기까지 14년의 세월을 일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자를 얻기 위해 그는 7년을 며칠 같이 여겼다고 표현하고 있다.

레아를 위한 7년은 그의 마음의 표현이 나타나 있지 않지만 라헬에 대한 그의 마음은 기쁨과 즐거움과 모든 것을 다 가진 자의 마음이었다.

우리도 하나님을 섬김에 이러한 열애의 마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을 섬김이 하루하루가 즐겁고 기쁘고 세상을 다 가진 마음일 때 하나님도 우리를 기뻐하시리라 믿는다. 

 

2)  창 31:6"그대들로 알거니와 내가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거늘(服事), "

야곱은 많은 재물을 축적한다.

라반이 자신에게 대함이 예전 같지 않음을 안 야곱은 레아와 라헬에게 자신의 마음을 얘기한다.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다'

그렇다. 야곱이 말한 것처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맞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다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깊은 마음으로 섬김을 의미한다.

 

3)  마 20:28"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服事)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服事)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주님의 희생과 섬김은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놓는 것이었다.

우리를 향한 끝까지 사랑하신 사랑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자유를 허락하셨고 영생을 허락하셨다.

'대속물'은 '풀다', '자유롭게 하다'는 뜻. 가까운 친척을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기 위해 대신 부담하는 돈, 물건을 가리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4)  롬 12:11"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服事)."

'열심을 품고'는 성령 안에서 끓어올라, '성령이 주시는 힘차고 강한 능력을 받아서'란 뜻이다.

 

5)  롬 14:18"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服事)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稱許)을 받느니라."

칭찬'은 자자하게 칭찬하다. 영접하다. 인정받고 환영받는다는 뜻이다.

 

6)  딤전 1:12"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이를 충성 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服事)이니, "

바울은 주님을 핍박하던 자신을 용서하시고 그는 그에 감사하여 충성되게 일한' 나를 주님을 섬기라고 자신을 파견하셨다'라고'고백하고 있다.

아무나 섬김의 자리에 앉는 것은 아니다.

사랑과 주의 은혜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7)  벧전 4:10-11"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服事).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服事)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은사'는 직역하면 '선물'이란 뜻이다. 은사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값없이 주신 선물 곧 다양한 능력이나 재능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은사들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청지기'는 '집'과 '다루다'의 합성어. 집안일이나 하인 관리 등을 책임지고 감독하는 자를 가리킨다.

성도는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며 관리하는 자로서 자신이 받은 은사를 통해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유익과 덕을 추구해야 한다.

 

나를 따르라(跟從)

'아콜루데오'(동반하다)의 현재분사. 어떠한 환난에도 굴하지 않고 영원토록 뒤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1)  민 14:24"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專一) 따랐은즉(跟從)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온전히(專一)'은 가득 채우다, 만족시키다, 철저히 순종하다, 심히 만족시키다는 뜻이다.

갈렙은 하나님을 섬김이 그들과 달랐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의 하나님에 대한 마음은 온전한 말씀의 순종이고 그의 이러한 순종은 하나님에게서 큰 복을 받기에 합당하다.

 

2)  민 32:11"애굽에서 나온 자들이 이십 세 이상으로는 한 사람도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한 땅을 결코 보지 못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를 온전히 따르지(跟從)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주를 믿데 온전히 믿기를 원하신다.

광야에서의 생활은 철저히 자신을 죽이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가는 생활이다.

그 속에서 이스라엘은 모든 필요가 충족되었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 외에는 20세 이상 즉 세상을 맛본 자의 삶은 그러하지 못했다.

그들은 가는 곳곳마다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였고, 하나님의 분노를 자아내게 하므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3)  마 4:19-20"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跟從)."

'버려두고'는 '아포'(부터)와 '히메어'(떠나다)의 합성어. 권리나 재산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됨, 또는 포기함, 내 던짐을 뜻함. 세상 욕망을 버리고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의 자세를 잘 보여 준다.

모든 일의 첫째는 주님의 부르심에 따르는 것이다.

그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그 생명을 소유한 자가 다시 생명을 낚는 것이다.

주님 없는 생명은 가짜다.

그곳에는 희망도 없고 소망도 없고 심판만이 있다.

 

4)  요 8:12"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跟從)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따르는(跟從)'는 '동반하다' 어떤 환난이나 역경에 굴하지 않고 영원토록 뒤따르는 것을 나타낸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주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며 주님의 모습을 내면에 지니는 것을 의미한다.

즉 '주가 내 안에, 내가 주안에 있는 것'을 말한다.

 

귀히(尊重)는

'값을 정하다'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께 섬기도 봉사한 자에게 주께서 보상해 주시겠다는 말이다.

 

1)  시 49:20"존귀(尊重) 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깨닫지 못하는'는 '분별하지 못하다', '이해하거나 자각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존귀하다. 그러나 자신이 존귀함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인간성을 상실하고 멸망하는 짐승임으로 오직 주의 말씀에 순종하고 나아가는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한 자만이 존귀에 거할 수 있다.

 

2)  사 49:5"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나니 그는 태에서부터 나를 그의 종으로 지으신 이시요 야곱을 그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는 이시니 이스라엘이 그에게로 모이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여호와 보시기에 영화롭게(尊重) 되었으며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

'영화롭게'는 '풍부한', '영화로운', '강성한'이란 뜻. 조그마한 부족이나 부정적 요소가 없이 아름답고 완전한 상태를 가리킨다.

'존귀한'은 조그마한 부족이나 부정적 요소가 없이 아름답고 완전한 상태, 힘. 성도의 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 4:12)와 복음에 의해서(롬 1:16)만 생겨난다.

 

3)  히 2:7"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만물을 그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당신의 권능을 벗어 버리고 사람이 되어 고난을 받으셨다.

이렇게 되신 것은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으로서 인간과 하나님을 화목시키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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