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2:24-25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가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 하게 하는도다.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 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 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
엘리는 대제사장이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다. 그 둘도 제사장들이다.
성경은 그 두아들을 악인이고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고 얘기하고 있다.(12절)
'악인'이란 벨리알의 아들들. 사악하고 무가치하며 비열한 무리. 배도자, 불경건한 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이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고, 하나님을 업신여긴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엘리의 두아들의 행위가 13절부터 나오기 시작한다.
그것도 습관처럼 행하였다고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께 먼저 드려져야 하는 모든 것에 엘리의 두 아들은,
고기를 삶을 때에 찔러서 먼저 나온 것을 취하였고,
기름을 태우기 전에 그들이 먼저 날 것을 먼저 취하였고,
이 모든 것에 대해 그들이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藐視)하였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17절)
이 모든 행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행위에서 벗어나며 제사장의 직분에서 자신들의 직분을 망각한 행위이다.
본절은 그들의 소문도 아버지 엘리가 듣고 아들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아들들을 책망하는 말이다.
시 1:1"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惡人)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褻慢)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
褻 (더러울 설) 버룻없이 굴만큼 친하다. 허물없다. 더럽히다
慢 (게으를 만) 천천히 하다. 동작이 완만하다. 느리다. 멋대로 하다.
褻慢 (행동이) 무례하고 방자함.
엘리의 두 아들은 시편에서 본다면 그들은 악인이며 오만한 자들이다.
그들의 행위는 겔 22:26절에 너무나 잘 나타나 있다.
겔 22:26"그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였으며 나의 성물을 더럽혔으며 거룩함과 속된 것을 구별하지 아니하였으며 부정함과 정한 것을 사람이 구별하게 하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눈을 가리어 나의 안식일을 보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힘(褻慢)을 받았느니라."
제사장들의 이런 행위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더럽힘을 당한 것을 볼 수 있다.
멸시(藐視) 업신여기다. 깔보다.라는 뜻이다.
엘리의 두 아들이 제사장으로서의 이런 행위는 신성모독에 해당한다.
민 14장 정탐꾼 사건에서도 10명의 정탐꾼과 그들 편에 선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같은 단어를 쓰고 계시다.
엘리 대제사장의 아들들에 대한 책망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도 두 아들의 소문을 듣고 알고 있었다.
백성들도 다 안다고 봐야 한다.
그의 책망이 이미 다 커버린 아들들에게 소용이 없었다.
두 아들은 이미 자신들의 행위에 익숙해 있었고 그런 그들에게 하물며 아버지조차도 자신들을 제재할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아버지의 책망을 듣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자신들이 이렇게 행위를 하여도 야단치거나 때리거나 어떤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이런 행위는 백성들도 그들의 행위를 본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제사장들의 잘못된 인식과 행위는 지도자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에 따라서 같이 행동하는 성도들에게도 미치는 영향은 제사장들의 모습을 답습하게 되므로 타락으로 가는 범죄의 길은 엄청나다.
엘리의 오류는 더 강하게 아들을 책망하고 그에 상응하는 제재를 통하여 하나님께 돌아오는 길을 취하지 않으므로 모두 멸망으로 치닫는 것을 볼 수 있다.
엘리는 대제사장으로서의 직무를 유기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중심적인 삶이 아니었음을 볼 수 있다.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 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심판하시려니와'는 '중재하시겠지만'
사람과 사람과의 문제는 하나님이 중재자로 나서서 그들의 옳고 그른 문제를 해결하신다.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나님께 범죄하면 문제를 중재할 해결자가 없다.
엘리의 이 말들은 얼마나 강한 메시지인가.
너희들의 이러한 범죄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알리는 얘기이다.
그는 두 아들이 소문처럼 그렇게까지 범죄 하였을까 생각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니면 자신의 아들들이기 때문에 관대하였던가.
이에 대해 성경은 우리에게 말한다.
27절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엘리가 기도하는 대제사장이 아니다 보니 자신이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듣는 것이 아니라 따로 하나님의 사람이 나타나 그를 책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신 것을 보면 하나님은 엘리와 그의 두 아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는 시간들을 주신 것이다.
이 일은 후에(3장) 어린 사무엘에게도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그의 집에 대한 그전에 한 경고를 그날에 이루시겠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3:13 '그의 아는 죄라고'말씀하고 계시다.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29절 '네 아들들을 나보다 중히 여겨'
엘리가 하나님보다 아들들을 더 중히 여긴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의 아들들에 대한 책망이 경했던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행하여지는 거룩함에 손상을 입혔고 아들들의 악행을 막지 않았으므로 방관 죄에 속한다.
그런 그들의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루리라고 저주하신다.
하나님의 책망이나 징계가 바로 오는 자는 복 받은 자이다.
왜냐하면 잘못했다고 그 자리에서 회개 기도할 수 있지만, 그런 것이 없이 지나간다면 자신이 범한 죄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 회개의 시간을 놓쳐버리기 때문에 죄는 반복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존중히(尊重)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尊重)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藐視) 자를 내가 경멸히(輕視) 여기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존중'은 '유력하게 하다', '무겁게 하다'의 '카바드'에서 유래'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를 귀중히 여기신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이 말씀은 모든 시대를 막론하고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말씀이시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지금 이 둘 중 어디에 있는가.
주님을 경외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고 있는가?
하나님을 우습게 보는가?
그것은 각자가 알 수 있는 길이고 각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