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5:7-12
긍휼히(憐恤)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憐恤)이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淸心)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和睦)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逼迫)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逼迫)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逼迫)하였느니라.
긍휼(憐恤) : '동정하다', '긍휼히 여기다'. '자비'. '긍휼', 불쌍히 여김을 뜻한다.
긍휼(憐恤) 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1) 창 19:16"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憐恤)를 더하심이었더라."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데리고 하나님이 지시할 땅으로 같이 떠났다.
그들의 소유가 많아 같이 동거할 수 없음으로 서로 제 갈길로 가는 데 롯은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한다.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 때문에 그곳을 멸하시려고 그 땅에 들어가실 때에 롯의 집에 머물러 있게 되고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롯과 롯의 아내와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신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긍휼(憐恤)을 여기셨기 때문에 그들을 그 성에서 내보셨다고 말씀하고 계시다.
29절에는 그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 내보내셨다.
신약에서는 말세 때에 눅17:32"롯의 처를 생각하라" 한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구원받은 롯과 그의 가족 중에 롯의 아내는 하나님의 명령 '뒤돌아 보지 말라'는 말씀을 어기면서 소금 기둥이 된다. 구원의 문턱에서 벗어난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은 무조건 순종하여야 한다. 인간의 기준으로 판단할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라, 하지 말라 이다.
하나님이 하라 하면 하고, 하지 말라 하며 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순종이다.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 오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우리가 가늠할 수 없다.
2) 사 49:15"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憐恤)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잊을지라도는 원뜻은 '잘못 놓다', 자주 잊어버리다'로 기억력, 주의력 또는 관심의 결여로 빈번하게 망각하다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이 부모의 사랑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3) 마 9:13"너희는 가서 긍휼(憐恤)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긍휼(憐恤)과 제사는 모두 다 필요하고 중한 것이다.
긍휼(憐恤)이 제사보다 더 선한 것이며 먼저 베풀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사의 내용은 사랑과 긍휼(憐恤)인 것이며 이것들이 결여된 제사란 형식에 치우친 것에 지나지 않는다.
4) 롬 11:30-32"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憐恤)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이방인이 긍휼(憐恤)하심을 얻고, 이방인에게 베푸신 긍휼(憐恤)로 이스라엘이 긍휼(憐恤)을 얻으며, 모든 사람을 불순종으로 가두어 두시매 모든 사람이 긍휼(憐恤)함을 얻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긍휼(憐恤) 히 여기신다는 것이다. 즉 인류의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다.
5) 마 18:21-35 용서 비유
어떤 범죄자라도 주님 앞에 회개하면 용서하시듯이 동일한 방법으로 타인을 용서하라는 것을 가르치는 비유이다.
마음이 청결(淸心)한 자는: 마음을 깨끗이 가지다.
'순수하다'는 뜻으로 '분리하다'는 의미를 포함. 따라서 이는 죄로부터 분리된 순수함을 가리킨다.
1) 시 73:1"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淸心)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가식이나 간사함이 없는, 죄로부터 분리된, 마음이 정결(淸心)한 자를 가리킨다.
2) 잠 22:11"마음의 정결(淸心)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
마음이 정결한(淸心) 자는 은혜로운 말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는 존귀히 여김을 받음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출 33:22-23 "내 영광(榮耀)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인간은 하나님을 볼 수 없다.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커다란 영적 축복인 것이다.
화평(和睦)
1) 엡 2:14-15"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
화평은 구약의 '샬롬'에서 유래한다.
예수께서는 화평의 왕으로서 십자가의 구속 사역을 담당하셔서 우리의 막힌 담을 허시고 율법을 폐하셨는데 율법을 완전히 없앤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율법을 굳게 세우셨다(롬 3:31)
2) 살전 5:13"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목하라는 말씀이다.
3) 히 12:14"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막힌 담을 헐어 주시므로 성도는 하나님과 화평을 가지게 되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적 역할을 수행하여 대속으로 택하신 백성으로 거룩을 보존시키시며 확립시키는 일을 하셨다.
우리의 죄를 속량 하시기 위해 죄 값을 치르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으므로 화평과 거룩함이 없이는 절대로 하나님을 볼 수 없다.
4) 벧전 3:11"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성도들 간의 서로를 세워주고 아끼며 사랑과 관심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행 13:33"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시 2:7, 히 1:5)
박해(逼迫)
1) 창 49:22-24"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逼迫)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하나님이 요셉에게 베푸신 은혜는 그와 그의 두 아들과 더불어 요셉의 열한 형제와 형제의 가족까지 모두 구원을 얻는다. 전능자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의 많은 고통과 적들로부터 구원하셨고 그들의 대적들의 박해(逼迫)로부터 구원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다.
2) 마 5:4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逼迫)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3) 마 10:23"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逼迫)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
4) 롬 8:35"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逼迫)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어느 누구도 어떤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라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5) 고후 12:10"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逼迫)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육체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바울의 신앙적인 태도에서 인간은 자신의 연약성을 깊이 인식하면 인식할수록 더운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그 결과로 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 눅16:19-31 '부자와 죽은 나사로의 비유'
부자가 노력해서 부를 누리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자신의 주위를 뒤돌아 보아 부를 누리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 부를 통하여 가난한 자에게 관심을 돌리지 아니한데 있다.
하나님이 경계하신것은 부자가 특권 의식 속에서 오만과 교만함에 주위를 우습게 보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부자가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신 것이다.
나사로가 구원받은 것은 그가 가난뱅이요 병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 마음속에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늘 나라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
2) 히9:24"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도도 주님으로 인하여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다.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逼迫)하였느니라.
성도의 고난과 핍박은 주님의 심정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라고 하신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성도는 선지자들처럼 시 126:6처럼 '울며 씨를 뿌리려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돌아오듯이' 눈물 어린 노력은 기쁨의 결실을 거둘 수 있기 때문에 눈물의 의의 씨를 뿌리는 것이다.
산상수훈은 단일한 주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나열하고 있다.
그러나 팔복의 특성은 하나님을 향한 성실한 신앙 자세라는 면에서 하나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성도는 이 천국의 시민권을 가진 자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