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12:1-3
그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發怒)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安慰)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拯救)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게 물을 길으리로다.
진노(發怒) 성내다, 화내다.
하나님의 진노하심은 우리는 성경을 통해 많은 곳에서 볼 수 있다.
1. 출 4:14"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發怒)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
모세를 산 호렙에서 부르셨을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큰 소명을 주신다.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구원하라는 사명이셨다. 모세는 자신은 그럴 수 없는 인간이므로 말씀을 따를 수 없다고 국극 부인한다. 이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노하여 너를 돕는 형 아론을 상기시키시고 그의 손에 그가 가지고 있는 지팡이로 이적을 행할 수 있음을 말씀하신다.
모세는 40년은 왕궁에서 화려하고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는 자신의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돕기 원했다. 결론은 그는 자신의 생명을 보전키 위해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는 것이 전부였다. 그가 광야로 쫓겨나서 그는 40년을 양들과 살았다. 그는 양을 치면서 대자연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물었을 것이고, 자신의 방법과 자신의 혈기가 다 없어지는 것을 알았다. 그는 날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먹고살기 위해 장인의 양들을 돌보았을 뿐이다. 철저히 하나님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사람마다 틀리겠지만 모세는 그렇게 40년이라는 세월을 보냈고 80세에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았을 때에는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저 죽음을 바라보는 노인이라고 여겼으므로, 그리고 노인이 된다는 것은 죽음이 그만큼 가까이서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런 나이에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셨다. 그것도 큰 소명 '내 민족을 구원하라.' 그리고 애굽으로 내려간 모세는 형 아론과 함께 바로 앞에 담대히 서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킬 모든 싸움을 말씀에 의지하여 승리함을 볼 수 있다.
2. 민14:18"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허물을 사하시나 형벌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이스라엘은 출애굽한 후 가나안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가나안에 12 정탐꾼를 보낸다. 한 지파에 한 명씩 12명이 선발되고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 40일을 정탐하게 된다. 돌아온 그들은 자신들이 본 것들과 느낀 것들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10명은 두려운 마음뿐이었다. 그들은 그곳을 점령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네피림 후손의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고 자신들은 그들에 비해 메뚜기 같이 보잘것없음을 나약한 존재임을 보고한다. 이에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곧 올라가서 그들을 치자고 권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역설(力說)한다. 이에 이스라엘이 그들을 치러할 때에 주의 영광이 회막에 나타나고 하나님의 노가 그들을 치러할 때에 모세가 중재기도를 드리는 장면이다. 이 사건으로 이스라엘은 40일에서 하루를 일 년씩 계산하여 40년을 광야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20세 이상으로 가나안에 들어가는 인물은 갈렙과 여호수아밖에 못 들어가게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철저히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시고 그런 자들은 결코 버리지 아니하시며 구원하심을 볼 수 있다.
3. 히 12:5"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하나님은 관심이 있고 사랑하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꾸짖으시고 노하심을 볼 수 있다. 이런것이 없으면 사생자라고 말씀하고 있다. 징계는 친아들에게 하는 것이고 잘되라고 바른 길로 가라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일종의 사랑의 매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이 광야 40년 동안 행하신 뜻을 잊지 말라고 계속 권면하고 있으며 여전히 악한 마음을 품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하라고 그리고 죄의 유혹으로 자신의 마음이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잠깐이다.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면 말씀에 아멘으로 돌아가면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죽는 그날까지도 계속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유혹으로 우리가 접하는 문화는 우리을 앞서가고 항상 뒤처져 있는 우리는 자신의 현실을 볼 때가 많다. 과학은 하루하루 빠르게 달려가는데 나이가 들수록 머리와 손은 둔해지고 숨 가쁜 세월을 바라보며 모두가 생활의 두려움과 고통으로 자신들도 모르게 하나님을 찾는 시간보다 과학을 뒤쫓던가, 모르겠다고 자신을 내려놓는 길로 걸어가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진리는 변하지 않는 것이다. 세월이 어떻게 흘려가든 우리는 우리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에 순종하며 걸어가면 된다. 현실을 뒤좇아가다가는 우리가 숨이 턱에 받쳐 죽기 때문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기울어져가는 유다왕국의 장래를 바라보면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회개의 촉구를 선포하고 있다. 유다는 우상숭배와 영적인 타락과 경제 사회 도덕적인 방종과 모든 문제에서 지금 겪고 있는 유다의 환난은 이러한 죄악 된 이유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고 있음으로 이러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참된 회개와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회복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진노는 감사의 조건임을 역설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이 당신의 자식들을 잘못된 생각이나 행동을 고치기 위한 훈계의 방편이기 때문이다.
'안위(安慰)'은 '한숨쉬다', '뉘우치다', '안심시키다', '동정하다'는 뜻. 괴롭고 불편한 과거가 지나고 평온하고 다정한 관계를 이룸을 말한다.
1. 창 5:29"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노아의 이름의 뜻이 '안위'이다. 아버지 라멕이 아들의 이름을 노아라 지었다. 노아의 할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 므두셀라(969세)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에녹으로 그는 65세에 므두셀라를 낳고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죽음을 맛보지 않고 365세에 그를 데려가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시다. 에녹이 하나님과의 동행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 그분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므두셀라의 이름의 뜻은 '그가 죽으면 종말이 온다'이다. 하나님은 므두셀라를 오래 살려주셨다. 그 속에는 하나님이 많은 자들이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랑을 엿볼 수 있다. 그가 죽고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방주을 만들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물로 세상을 심판하셨다. 하나님의 구원은 다시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하나님은 항상 의로운 자를 남겨두심을 볼 수 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고 준행하는 자을 하나님은 사랑으로 인도하신다.
2. 눅 2:25"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시므온' (하나님이) 응답하셨다. 주석가들에 의하면 바울의 스승인 가말리엘의 아버지, 당대 최고의 율법학자 힐렐의 아들로 추정되며, A.D. 13년에 산헤드린의 회장이 되었다고 한다.
시므온이라는 사람은 예루살렘 사람으로 성경은 그를 의롭고 경건한 자라고 말씀하고 계시다. 그는 성령께서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였고 그날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니 거기에 아기 예수와 그의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성전에 들어오고 이에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그리고 그들을 축복하였다.
우리는 안다. 우리가 기다리는 메시야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었다. 하나님과의 막힌 담을 허시기 위해 오셨음을 믿음 안에 들어선 자들은 이것이 구원의 큰 메시지임을 그리고 구원을 바라는 우리에게는 큰 위로가 됨을 이에 우리는 감사할 따름이다. 시므온이 날마다 위로자를 기다리듯이 우리도 날마다 위로자이신 주의 은혜와 사랑이 필요한 자들이다. 오늘 우리는 아멘으로 받으면 되는 것들을 그것조차도 힘들어하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주님을 잊어버린 것이 아닌가, 주님보다 더 큰 것에 목숨을 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의 영혼보다 더 값지다고 생각하는 일에 마음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돌아볼 시간이다. 생각을 바꾸면 된다. 요한삼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요삼 2절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영혼이 잘됨같이가 먼저이고 그 후 범사에 잘되고 강건함이다. 우리는 상황이 반대로 된 것을 저주라 부른다. 먼저 영혼의 잘됨을 구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 주님이 오셨고, 먼저 주을 영접하고 주의 뜻대로 살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온 축복이 진정한 축복이고, 이것이 주의 큰 은혜와 우리에게 주시는 안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구원(拯救)예솨'는 '넓다', '완전하다', '해방하다'의 '야솨'에서 유래 모든 압박과 제재로부터 해방되어 자유와 안전을 얻게 됨을 의미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출 15:2)
이 시는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넌 후 하나님을 찬양하며 불렀던 노래이다. 모세는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전지전능하시고 창조주이신 구원의 하나님, 하나님은 모세와 그와 함께 한 이스라엘과 언제나 함께 하셨다. 그들을 위해 싸우시고 그들을 위해 홍해를 같이 건너주셨으며 그들을 위해 가나안을 허락하셨다. 그 긴 여정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셨고,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함께 하시며 위로와 평강과 안위를 허락하셨다. 그들이 아플 때에 아파하셨고, 고통하며 울부짖을 때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자.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하고 기쁘고 즐거운 것이다. 동행, 우리를 향해 항상 두 팔을 벌리시고 환영하시며 같이 걸어가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감사함으로 나아가자.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게 물을 길으리로다.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 동안 물에 대한 불평불만으로 하나님을 시험(試探) 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하나님은 그런 와중에서도 그들에게 기적적으로 물을 허락하셨다. 인간은 물이 없으면 오래 버티지 못한다. 물은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소중한 것이다. 특히 물이 귀한 이스라엘에게는 생명수와 같은 것이다. 그것을 물이 구원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나타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시고 노래이시고 우리의 구원이시다.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주의 은혜가 임하셨다. 담대히 주 앞에 나아가 찬양과 예배로 하나님께 경배하자. 경배하되 신령과 진정으로 감사함으로 나아가자. 몸만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영까지도 거짓됨 없이 주 앞에 무릎을 끊자. 하나님은 내 아버지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