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16-17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福音)'은 '좋은'과 '알리다'의 합성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믿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된다는 구원의 복된 소식.
또한 '복음'은 '복된 음성'으로 오직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이 구약에서 끊임없이 예언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오시게 하시고 하나님과의 막힌 담을 허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구원과 주 예수의 부활하심으로 우리도 주가 다시 오실 때에 주와 같이 천국에 올라가는 기쁜 소식을 말한다.
'복음'을 우리는 '기쁜 소식'이라고 알고 있다. 소식은 내가 경험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경험한 것을 접한 것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저 소식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안 믿는 자들이 접할 때에는 복음은 소식에 불과하나 접한 우리에게는 소식이 아니라 내가 직접 만난 주님 내가 사랑하는 주님으로 볼 때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우리의 생명을 살리는 '복된 소리'이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담은 책이 사복음서이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을 우리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이라고 하며 복음서를 쓴자의 이름을 앞에 따서 붙였다. 이들은 다양한 관점에서 각자 복음서를 썼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쓴 복음서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풍부하고 사실에 입각한 정확하며 더 완전한 모습을 복음서를 통하여 접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한 없는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구원의 확신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시다.
그러므로 복음이라는 단어는 주님에게 쓸 수 밖에 없다. 본절도 이 부분에 대해서 분명히 하고 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라고 이는 구원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뿐이시다. 다른 이름을 주신적이 없다. 그래서 성경은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임을 성경은 끊임없이 선포하고 계시다.
마가는 1장 1절에 이렇게 써 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1장 1절에 이렇게 전하고 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여기의 태초는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영원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아주 먼 먼 옛날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때에 주님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하나님은 자신을 설명함에 모세에게 '스스로 영원히 있는 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우리 인간에게는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주님이 말씀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임하시고 우리의 삶에 얼마나 구체적으로 역사하시는 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 생명이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이다.
시대가 발전하고 많은 것을 누리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 누림을 버릴수가 없어 우리는 자신을 잊어버리고 있다. 자유의 시간을 잊어버리는 질풍노도(疾風怒濤:거친 바람과 화난 파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잊어버리고 더 잡고자 하는 욕망을 향해 달려가다 보니 어느새 많은 사람이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바라보았을 때 샛길로 멀리 와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고 고통하며 괴로워하고 있다. 돌아가자 다시 주님께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이심을 당신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신 은혜의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1. 고전 4:15"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고전 4:23"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바울의 서신서에보면 복음이라는 단어를 생각 이상으로 많이 쓰고 있다. 이 복음을 위하여 애쓰고 수고하는 자신의 모습과 복음을 받은 자들의 헌신에 대하여, 그리고 그는 모든 자들이 복음으로써 칭찬받기를 간절히 바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 갈 1:11"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복음에 확신을 갖고 헌신하는 바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도바울은 바리새인중의 바리새인이었고 철저한 율법주의자였다. 그는 주를 믿는 자를 죽이기 위해 문서를 가지고 가다가 주님을 다멕섹 도상에서 만나고 회개하여 죽기까지 순종한 자이다. 그의 삶은 오직 복음이었고, 많은 서신을 우리에게 남겼다. 그가 얼마나 주의 일에 열심이었고, 죽기까지 말씀에 의지하여 삶을 살았던 것을 그의 주옥같은 말씀을 통하여 볼 수 있다. 그의 서신은 항상 두 가지 길을 예시하고 있다. 복음 되신 주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던가 주님을 믿지 않으므로 심판 때에 멸망의 길로 가든가 그러면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신 하나님의 복음을 믿으라고 권고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갈 2: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바울의 철저한 이신득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바울은 이제는 오직 주 안에서 사는 것이라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은혜에 감사하여 이제는 복음을 위하여 사는 것임을,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그의 진지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의 깊은 마음의 밑바닥에서부터 올라가는 주를 향한 믿음과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복음은 위대한 것이다. 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을 불러다 주고 죽기까지 충성했던 바울을 볼 수 있다.
3. 엡 3:6-7"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상속자'은 '공동 상속인', '공동 참가자'의 뜻. 곧 이방인들도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의미한다.
복음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살리셨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여 주었고, 주 안에서 함께 주님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고 지체가 되고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에 따라 자신이 사역을 감당하였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가 일방적으로 복음의 비밀을 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따라,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통하여, 복음을 전하였음을 고백하고 있다. 바울은 하나님이 자신을 선택하여 주셨고, 부르셨고, 부르심에 합당한 능력을 부여하시어 주의 일을 감당하게 하여 주심을, 귀한 은혜의 선물임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사랑을 전하기 위하여 생명의 위험도 무릅쓰고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온전히 순종하는 그의 참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 모두는 교회가 교회의 사역을 잃어버리고 있음을 알고 있다. 모두 한결같이 많이 퇴색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모두 자각하고 있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하게 짚는 사람이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우리 각자가 자신의 내면에 무엇이 먼저인지 주님이 먼저인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이 가장 먼저인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것을 더하시겠다'라고 하셨다. 다시 십자가만을 바라보자. 영원한 구원이신 생명의 주님을 바라보자 말없이 피 흘려주신 보혈을 바라보자 돌아가자 돌아가자 우리 모두 십자가 앞으로 돌아가자.
하나님의 능력은 복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