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4: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
주님이 자라나신 나사렛에 이르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서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읽으시고 성경이 말씀하신 것이 너희 귀에 응하였다는 말을 듣고 그곳 사람들이 예수님을 쫓아내시는 장면이다. 이때 주님이 엘리야 시대의 사렙다 과부와 엘리사 때의 이방인인 나아만을 여기서 언급하고 계시다.
나아만은 수리아 왕의 군대 장관이었다. 그러나 왕하 5장에는 그가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였다고 말씀하고 계시다. 그의 집에는 이스라엘 땅에서 잡아온 한 소녀가 나아만의 아내를 수종 들고 있었다. 소녀가 여주인에게 말한다. 우리나라에 선지자가 있는데 그는 능히 나병환자를 고칠 수 있다고 그 말을 들은 나아만의 아내가 이 좋은 소식을 나아만에게 알린다. 이에 나아만은 자신의 왕에게 알리고 그는 은 금과 의복을 가지고 이스라엘 왕에게 찾아간다. 이스라엘 왕은 황당한 그들의 요구에 깊은 고민에 빠진다. 이에 엘리사가 그를 자신에게 보내라고 전갈을 보낸다. 나아만이 엘리사의 집에 가게 되고 엘리사는 그를 맞이하지 않고 오직 사자를 보내어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권하고 그렇게 되면 네가 회복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한 나아만의 생각이 나온다. 그는 첫째 화를 내었다. 자신은 그래도 아람 왕의 가장 신임을 받는 군대 장관이기 때문에 엘리사가 자신을 맞이하기 위해 나와 극진히 자신을 대접하고 자신의 문둥 환부에 손을 얹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고침을 받을까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엘리사는 오직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말하고 있다. 그럴 거면 자신의 고향인 강물에서 씻으면 훨씬 더 낫다고 분노하며 떠나려고 하는 인간의 방법과 생각으로 그가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에 그의 종들이 그를 달랜다. 이보다 더 큰일을 행하라 하여도 하여야 할 판에 무엇이 분노를 일으키고 실행도 하지 않고 돌아가려 하느냐라고 이에 나아만은 마음을 돌이키고 요단강에 이르러 몸을 물에 잠근다.
이스라엘에서 잡혀온 소녀는 나아만과 그의 아내에게는 큰 기쁨의 소식을 전한 존재이다. 소녀는 비록 지금 몸의 구속을 받은 존재이나 그녀는 자신이 아는 상황을 그들에게 전함으로 나아만에게 소망을 주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니느웨 성에 가서 외치라는 말씀에 다시스로 도망간다. 바다에 빠지게 되어 사흘 밤낮을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기도를 하게 되고 그는 다시 니느웨의 성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알린다. 니느웨 성의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이 그는 싫었다. 그러나 구원의 하나님의 생각은 그와 달랐고 하나님은 그 일을 행하시고 회개하는 니느웨의 사람들을 구원하심을 볼 수 있다.
소녀도 달갑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나라를 침범하여 부모와 떨어져 아람의 노예가 된 상태에서 무엇이 기쁘고 즐거웠겠는가 그러나 소녀는 자신이 듣고 아는 엘리사의 얘기를 해 주었다. 복음이란 그런 것이다. 싫다 좋다는 우리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명하시면 우리는 그저 말씀에 순종하여 행하기만 하면 된다. 선교도 그렇다. 편견을 두어서는 안 되지만 우리는 일본에 가서 선교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민족이 겪었던 아픔은 세월이 지나도 흔적과 상처가 남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대만에서 공부할 때에 한 일본인이 있었다. 그녀는 어떻게 보면 귀한 존재이다. 우상숭배가 많은 일본에서 주님을 영접하고 신학공부를 하겠다고 대만까지 와서 열심인 것을 보면, 그리고 나도 그녀를 색안경을 끼고 보았다고 본다. 내 내면에 싫어하는 감정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소녀도 요나도 같은 심정이었으리라 본다.
나아만은 첫째로 계집종의 말을 믿었다. 그는 그 말을 믿고 이스라엘의 선지자를 찾아갈 마음을 갖고 모든 준비를 하였다는 것이다. 전도를 하다 보면 하나님이 허락한 전도가 있다. 어느 날 계속 기도하면서 한 인물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 사람을 만나 예수 믿으시라고 하였다. 내가 한 말이라고 예수 믿으라는 말 한마디였다. 그녀는 선득 그러겠다고 하면서 그 자리에서 주님을 영접하였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사건이었다.
나아만은 길을 떠나면서 많은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에게 줄 예물이다. 그는 자신이 믿는 우상의 방법들을 생각했을 것이다. 경건한 마음과 많은 재물을 바치면 좋은 복이 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갔을 수도 있다. 그는 림몬이라는 신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는 공수로 신들을 접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아만에게 또한 가지 좋은 점은 주위의 인물들이다. 그를 위로하고 책망하며 그와 함께 한 자들이다. 그들의 협조가 없었다면 나아만은 엘리사의 말을 거역하고 돌아갔을 것이고 그도 성경의 한 장을 장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아만은 들을 귀가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마음이 강퍅하고 완악한 자는 주위의 경고나 진심에서 우러나는 이야기를 듣기를 거절하고 자기 생각과 자기 고집으로 망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나아만은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였고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다.
왕하 5:14'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담그니 그의 살이 어린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그는 물속에 한번 담그고 올라왔다. 그의 몸은 여전히 나병환자였다. 그렇게 여섯 번까지 그의 몸은 요단 물에 담갔으나 여전히 나병환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게 뭐야'하고 포기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일곱 번째 담그고 그의 몸은 깨끗하여졌다. 그렇다.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하나님은 쉽게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은 부분들이 있다.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시지 인간은 쉽게 포기하는 성질이 있다. 내가 이렇게 말씀대로 하였는데 왜 그리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외로움과 슬픔에 잠기며 자신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원망할 때도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인내로서 모든 것을 얻기를 바라신다. 약 1:4'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말씀하고 계시다. 우리는 이미 주님과 동행하며 믿음의 길로 들어선 자들이다. 주의 더딤이 우리에게 조급할 수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왜 그러하셨는지 알 때가 너무나 많다. 지금 당장 얻어지지 않는다 하여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불신하여서는 안된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하나님이 여리고를 허락하셨을 때에도 그들에게는 여리고 성을 육일 동안 하루에 한 번씩 돌게 하시고 마지막 일곱째 날에 여리고을 돌고 소리치라고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이 여리고성을 무너뜨리신다. 우리의 기다림은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시간들이다. 앞서거나 멀리 뒤처지지 말고 주의 말씀에 아멘으로 순종하며 나아갈 때에 주의 은혜가 임하되 넘치도록 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도 그에게 약속의 자녀를 허락하셨다. 그가 75세에 갈대가 우르에서 나와 가나안에 머문 지 25년이 지난 100세에 약속의 아들 이삭을 낳는다. 그는 그 약속을 받기까지 25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 애굽에 팔린다. 그는 보디발의 집에서 하인 노릇 하다 그 주인의 아내 유혹을 뿌리치고 다시 억울하게 감옥에 간다. 거기서도 그는 꿈을 풀이해 주었던 술 맡은 관원장의 기억으로 바로의 꿈을 풀어주고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기까지 험한 시간들을 보낸다.
다윗은 소년 시절에 사무엘의 기름부음을 받고 삼십 세에 왕위에 오른다. 그가 왕위에 오르기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고 왕위에 오른 후 사십 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린다.(그는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렀고, 삼십삼 년 동안 예루살렘을 다스린다.) 끝까지 말씀을 붙들고 산 자들의 인내의 결과를 볼 수 있다.
나아만은 말씀에 순종함으로 나병이 깨끗이 나았다. 병이 나은 그의 행함은 먼저 엘리사에게 와서 고백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왕하 5:15'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라고 신앙고백을 하고 가지고 간 예물을 엘리사에게 받치려 할 때에 엘리사는 그 예물을 받지 아니한다. 나아만의 다음 행동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가지고 가며 이제부터는 오직 하나님에게만 예배를 드리겠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떠나면서 엘리사에게 한 가지 용서를 구한다. 자신이 돌아가면 어쩔 수 없이 림몬의 신당에서 왕이 경배할 때에 자신도 굽힐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런 나아만에게 엘리사는 평안히 가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는 엘리사가 나아만의 현실적인 상황을 이해하였기 때문인지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에게 하신 말씀이 없으셨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아니면 이방인이 국제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에서 나병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이스라엘에 찾아온 그에게 더 큰 기대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그를 고쳐주고 그저 무사히 아무 문제없는 것으로 만족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나아만은 억지로라도 순종하였고 그 결과로 고침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엘리사 시대에 그 많은 나병환자 중에 고침을 받은 자는 나아만 한 사람이었다고 칭찬하고 계시다.
우리는 주님의 시간을 기다릴 줄 아는 자들이 되어야 하되 끝까지 주의 뜻대로 인내하여야 한다. 내가 급하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항상 주님의 시간을 기다리되 주의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며 인내의 수고를 하여야 한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