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6:28-29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信 神所差來的, 這就是作 神的工)
성경은 구약 39권 신약 27권으로 66권으로 되어있다. 구약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고, 신약은 오신 예수그리스도와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에덴 동산에 첫 사람 아담을 두신다. 그가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범함으로 에덴에서 쫓겨나면서 모든 사람은 원죄를 갖게 되었다.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인류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창 3:15절에서부터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예언하기 시작하면서 성경 구약 전체는 오실 메시야에 대하여 끊임없이 예언하고 있다.
구약의 예언대로 주님은 이땅에 오셨다. 그분에 대한 얘기는 신약 전체에 말씀하고 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오셨고 믿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부활과 영생을 위해 오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누구인지 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지 신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
본절은 유대인들이 주님에게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묻고 있다. 그들은 여태까지 배우고 익힌 것이 모세의 율법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일이란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하늘 양식으로 인정하고 있는 율법을 지키는 것만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되었고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의 메시야관은 정치적이고 군사적으로 자신들을 부강하게 하고 자신들을 이방인들의 손으로부터 구원할 정치적인 메시야를 기다린 것이다. 그들의 이러한 생각은 참 메시야로 오신 주님을 받아들일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고 바란 메시야는 주님이 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우리가 주의 일을 감당할 때에 주님의 이름을 위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생각대로 되는 것을 바란다면 그것은 주의 일이 아니다. 주님의 이름을 드러내고 주님께 영광 돌릴 때만이 주의 일이다. 나의 의나 나의 영광이 들어간다면 주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위한 것이기에 이미 자기 상을 받은 것이므로 주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므로 주의 일은 두렵고 떨림으로 감당하는 것이다. 자기 의가 들어가 있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가 항상 자신을 감찰할 필요가 있다.
성경은 우리가 주님을 믿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에게 구원 얻을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은 다른 이름을 허락하신 적이 없다. 그런 주님께서, 요한 복음에는 '주님이 자신에 대하여' 말씀하신 부분이 몇 군데 있다.
주님의 자기 선언
1) 요 6:35 생명의 떡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을 의미한다. 이 연합을 통하여 성도는 그리스도로부터 생명의 떡을 공급받으므로 결코 주리지 아니한다.
2) 8:12 세상의 빛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나를 따르는 자'는 '아콜루데오'(동반하다)의 현재 분사. 어떠한 환난에도 굴하지 않고 영원토록 뒤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빛은 생명과 동일하다. 그러므로 빛이신 주님은 어두움을 밝혀주고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3) 10:7 양의 문 (9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문'은 메시야적인 내용과 관련이 있는데, 오직 예수 한 분만을 통한 구원이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이 문으로 들어오거나 나가지 아니하면 절도요 강도이기 때문이다.
4) 10:11 선한 목자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
선한 목자는 도둑이나 삵꾼과 대조적인 모습으로 전적 희생을 통해 구속 사명을 완수하신 예수님의 선한 목자로서 양을 지키기 위한 자기희생 그 자체이심을 나타내고 있다.
5) 11:25 부활이요 생명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을 가리킨다. 부활 생명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을 때 부여된다. 그러므로 주님은 부활과 생명의 주로서 부활의 원천이 되심을 말씀하고 계시다.
6) 14:6 길, 진리, 생명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길'은 십자가에 달려돌아가심으로 휘장이 둘로 갈라져 하나님과의 막힌 담을 허신 것을 말한다.
히 10:22"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진리'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독생하신 하나님 곧 예수 자신을 의미한다.(요 1:14)
'생명'은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시다.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자 오셨다. (10:10) 이 생명은 주님 자체가 생명이시므로 이 생명은 영원하며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어느 누구도 이 생명을 빼앗아 갈 자가 없다.
7) 15:1 참 포도나무 (5절)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포도나무'는 구약에서는 종종 열매 맺지 못하는 이스라엘에 비유하였다. 포도나무는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와 더불어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흔한 식물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자신을 포도나무로 비유하셨는데 이는 그의 겸손과 함께 어려운 신앙 원리를 쉽게 가르치시고자 하는 그의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주님은 포도나무로써 과실을 맺는 힘의 근원이 되심을 의미한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주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며 주님의 모습을 내면에 지니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우리가 예수 안에 있고 예수께서 우리 안에 있는' 연합 상태를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께로 가면 연합이 이루어지고 이 연합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이 회복이 화평이 되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