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0:28-33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不怕)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怕)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一分銀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不許)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니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懼怕)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認)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不認).(눅 12:5-9)
주님께서 육과 영혼을 제시하신다.
육은 물질적이며 일시적이지만, 영혼은 비물질적이며 불멸의 것이므로 영혼을 해할 권세를 가지신 분은 하나님 한분 외에 없음을 단언하신다.
그러므로 육은 죽일 수 있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육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두려워하지 말고(不怕)
'두려움에서 완전히 탈피하라'는 뜻으로 단 한 순간의 공포마저 용납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사람은 고통이나 내일의 염려나 죽음을 앞두고 그것에 엄청난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만을 두려워할 때 우리에게 허락하신 영원한 나라를 생각한다면 이 모든 일들을 감당할 수 있다.
오직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되 항상 두려워하여야 한다(경외).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우리의 영과 육의 생사를 주관하시기 때문이다.
1) 시 3:6"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不怕).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다윗은 많은 고통에 처하게 된다. 거기다 백성들도 압살롬의 편에 서서 압살롬을 지지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다윗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의 방패시고 영광이시고 다시 자신의 명예를 회복시키시고 들어 올리실 것을 굳게 믿는 믿음에 확신을 가졌기 때문에 자신의 지금의 처지도 두려워하지 아니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2) 롬 3:18"그들이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不怕)."
'두려움'이 하나님과 관련하여 사용될 경우 거룩하고 경건한 두려움. 경외심을 뜻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자를 가리킨다. 그런자에게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경외에서 벗어난 자이기에 더 논할 필요가 없다.
3) 히 11:23"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不怕), "
믿음의 선조들은 극한 환경이나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과 소망을 잃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모두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받았다.
애굽 왕 바로는 이스라엘에 위협을 느끼고 출산하는 아이들을 죽이라고 산파에게 명령한 것을 볼 수 있다.(출 1:16)
산파들은 바로 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그 명령을 어겼고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게 된다.
모세의 부모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아이를 숨겼고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 되었어도 아이를 양육하는 축복을 받게 된다.
4) 히 11:27"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不怕)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
모세는 모든 부귀영화를 뒤로하고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자신뿐만 아니라 온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킨다.
이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믿었기 때문이다.
5) 고후 11:3"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怕)."
'하와'의 의미는 '생명'이다.
하와는 뱀의 간계로 미혹되어 하나님께 죄를 범하므로 인류를 원죄로 가든 사람이다.
우리에게 그런 간계에 빠지지 말고 항상 주를 향하여 진실과 깨끗함으로 자신을 지킬 것을 권면하고 있다.
6) 히 2:15"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怕)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
우리는 죽음을 무서워할 필요가 있다.
주 안에서 죽은 자를 우리는 잠잔다고 표현하고 있다.
잠자는 자는 아침이 되면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하듯이 우리가 주 안에서 잔다는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감을 말한다. 주님은 모든 사망 권세에서 즉 마귀에게서 승리하셨고 우리는 그런 주님의 뒤를 따라가면 된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주가 필요한 것이다.
7) 벧전 3:14-15"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不怕) 근심하지 말고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敬畏) 하고, "
베드로는 우리가 살면서 일어나는 주위의 핍박이나 나쁜 상황 속에서도 주께 헌신한 자들은 흔들리지 말고 확고하게 서 있으라고 강조하고 있다.
한 앗사리온에(一分銀子)
당시 노동자 하루 품삯인 1 데나리온의 16분의 1에 해당된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의 섭리 하에 있다.
참새조차도 생존과 죽음에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관여하시는 하나님께서 하물며 우리에게는 세밀한 관찰과 관심과 보살핌과 지키심을 나타내고 있다.
두려워하지(懼怕) 공포를 느끼다. 두려워하다.
심판이나 지옥 형벌에 대한 두려움을 가리킨다.
1) 빌 1:14"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懼怕)."
옥중에서도 바울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기쁨이 충만하였다.
빌립보 교인들도 비록 바울이 옥에 갇혀 있었지만 그러한 기쁨 속에서 바울을 돕고 말씀을 더 담대히 전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 요일 4:18"사랑 안에 두려움이(懼怕)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懼怕) 내쫓나니 두려움에는(懼怕)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懼怕)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이 사랑 안에 거하면 하나님 앞에서 전혀 두려움이 없이 담대해질 수 있다.
이는 사랑을 소유한 자들의 담대함이다.
그와는 반대로 담대함이 없이 두려움에 사로잡힌다면 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하지 못한 자들이다.
시인(認)
기본형 '호몰로게오'(찬양하다)는 예수를 찬양하는 것이 곧 그분을 시인하는 행위임을 일깨워준다.
공개적으로 자기 죄를 인정하고 동의하는 신앙고백 행위를 뜻함. '내 안에서 시인하면' 즉 예수와 연합된 상태에서 고백하는 것을 의미한다.
1) 롬 10:9-10"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承認) 구원에 이르느니라."
'시인하여(承認)'은 '함께'와 '말하다'의 합성어. 개인적으로 동의할 뿐만 아니라 공개적으로 고백한다는 뜻이다.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에 믿는다는 것은 불가 분리의 관계이다. 입으로 시인할 수 있는 것은 마음으로 믿었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의에 이르게 할 뿐 아니라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게 된다.
2) 히 3:1"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認)."
'믿는 도리 ~~~ 생각하라(認)'은 '인정', '고백', '공인'의 뜻. 동의하고 인정함. 신앙고백을 의미한다.
3) 요일 4:2"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주님은 완전한 인간이시며 완전한 신이시다.
우리의 죄를 위하여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그 사명을 완성하셨다.
4) 요일 4:15"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認)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시인하면(認)'은 기본형 '호몰로게오'(찬양하다)는 예수를 찬양하는 것이 곧 그분을 시인하는 행위임을 일깨워준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말씀에 순종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이루어짐으로 내주 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게 된다.
시인하지 아니하면(不認)
1) 딤후 2:12"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최후 심판 때에 갈리는 두 길에 우리는 어느 쪽에 설 건가!
2) 요일 2:22-23"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야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는 곧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주가 내 안에 내가 주 안에 있음을 경험하지 못하게 된다.
3) 요일 4:3"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성령의 도우심을 예수께서 성육 신하심을 시인하는 것과 거짓 영으로 미혹되어 성육신을 부인하는 것에 절대로 중간지대는 없다.
4) 요이 1:7"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부인하는 자는 적 그리스도요 사람을 미혹하게 함으로 진리를 떠나게 하는 악한 영들을 말한다.
성경을 벗어난 말씀에 미혹되어서는 안 된다.
예수를 부인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의 생명과 사랑을 거부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동네에 한 부자(父子)가 있었다. 그 동네 사람들은 그 아버지를 주님을 팔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라고 손가락질 하였다. 아들도 자신의 아버지가 공산당이 들어와 그 마을 교회 기도교인들을 죽일때 유일하게 배반하고 살아남은 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나이가 들고 죽음 직전에 아들에게 그날의 진상을 이야기 하였다. 공산당이 들어와 기도교인들에게 예수를 배반하면 살리고 계속 믿겠다고하면 죽이겠다고 하였을 때 계속 믿겠다고 한 사람은 자신이었고 믿지 않겠다고 한 나머지 사람들을 죽였다고 그날의 일을 소상히 얘기해 주었다. 그러면서 죽어간 사람들이 배반한 것이라고 차마 말할수 없어서 평생 손가락질 받고 살수 밖에 없었다고 아들에게 얘기해 주었다.
주님을 시인하며 사는 삶은 구체적이고도 회피할 수 없는 선택을 요구한다. 그러나 주님을 부인하지 않았을 때 우리에게 주신는 하늘의 상급은 우리가 치러야 하는 댓가와는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답고 큰 것이다. 눈앞의 작은 유익과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과 은혜를 상실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