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5: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주님께서 병든 자를 고치실 때 요구하시는 것
1. 중풍병자(막 9:2-7, 막 2:3-13, 눅5:18-25) 중풍병자의 병은 죄 때문에 병이 난 것이고, 네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주님이 고쳐주심
마태는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병자를 고치심
마가는 네 사람이 중풍병자를 데려왔으나 사람이 많으므로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그를 달아 내리니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람을 받았느니라 하심
누가는 사람이 많으므로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주님이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병을 고치심
죄 사함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께서 친구를 고치기 위해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아니한 우정과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들의 친구를 구원함을 볼 수 있다.
주님께서는 질병의 밑바닥에 죄의 문제가 있음을 아시고 죄가 질병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임을 지적하신다.
요 5:2-9 죄로 말미암아 삼십팔년 된 병자를 고치심
요 5:14"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 '은혜의 집'이라는 뜻인데 이러한 호칭은 오늘날 성도의 가정과 교회가 마땅히 차지할 수 있어야 한다.
38년 된 병자가 병을 고치기 위한 열정과 인내를 볼 수 있다.
그는 자신 앞에 계신 분이 구주이심을 모르고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라고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그러나 주님의 한 마디로 그는 병을 고친다.
2. 12년 혈루증 여인(마 9:20-22, 막 5:25-34, 눅8:43-48)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혈루증은 만성 자궁출혈병. 율법상 부정한 질병으로 간주.
율법에 따르면 무덤이나 피를 만지거나 죽은 자와 접촉하는 것은 불결한 일로 간주되었다.(레 5:1-3)
마태는 여인이 예수의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니 예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심.
마가는 여인은 병을 고치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으나 다 허비하고 예수의 소문을 듣고 예수의 옷에 손을 대니 병이 나은 줄을 깨달았을 때에 주님께서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 아시고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심.
평안은 '하나가 되다', '결합하다'에서 온 말로 진정한 평안은 하나님과 연합할 때 맛볼 수 있는 것임을 뜻한다.
누가도 마가와 비슷하게 쓰였다.
마 9:27-31 두 소경 너희 믿음대로 돼라
구원의 체험은 우리의 믿음에 달려 있고, 우리의 믿음은 주님에 대한 순종의 정도에 달려있다.
소리 지르는 두 소경에게 이 일을 할 줄 믿느냐는 물으매 그들은 그렇다고 대답한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졌다.
3. 날 때부터 소경(요 9:1-7)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시려고
제자들이 소경이 자기의 죄 때문인지 부모의 죄인지를 물을 때에 주님께서 그들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기 위함이라 말씀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그의 눈이 밝아짐.
바르시고는 '기름을 붓다'. 소경의 눈에 흙을 바르는 것이 영적 정화 행위임을 가리킨다.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 는 뜻
날 때부터 소경의 치유 사건은 매우 독특하다. 침을 뱉어 진흙을 사용하신 유례는 다른 복음서에서 볼 수 없다.
그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신 사건은 엘리사 시대 때 나아만 장군의 사건과 유사하다.(왕하 5:10-14)
치유의 이적을 볼 때 하나님의 능력과 인간의 전적인 신뢰가 서로 교차될 때 일어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4. 회당장의 딸(마 9:18-19, 23-26, 막 5:21-24, 35-43, 눅8:41-42, 49-56)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마태는 한 직원이 와서 예수께 자신의 딸에게 손을 얹으사 살려달라 요구한다.
직원의 집에 가니 소녀가 이미 죽음.
주께서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난다.
마가는 회당장 야이로라 소개하고 있다. 그의 집에 가니 소녀가 죽으므로 울며 통곡할 때 예수께서 아이의 부모와 자기와 함께 한 자들들 데리고 들어가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라는 뜻) 소녀가 일어나 걸음.
누가는 회당장 야이로가 죽어가는 외딸을 오셔서 살려달라 간구, 그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딸이 죽었다 알림.
주님께서 그에게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요구하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아이의 부모만 데리고 들어가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그 영이 돌아와 곧 일어남
갈릴리 가나에서 왕의 신하의 아들이 병듬(요 4:46-54)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감
요 2장의 가나의 표적 다음 두 번째로 공관복음에는 나오지 않는다.
왕의 신하는 사랑하는 아들이 거의 죽게 됨에 주님께 고쳐주심을 간구하기 위해 직접 주님을 찾아온다.
예수님이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심에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길에서 종들을 만나니 그들이 아들이 살았다고 한 시간이 주님이 말씀하신 그때에 아이의 열기가 떨어졌음을 알고 자기와 그의 온 집이 다 믿는다.
백 부장의 사랑하는 종(마 8:5-13, 눅7:1-10)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마태는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괴로워하오니 고쳐 달라고 간구함.
예수께서 가서 고쳐주겠다고 하시니 백부장은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라고 간구함.
예수님은 이스라엘중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다고 칭찬하시고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심.
백부장은 예수께서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임을 믿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이 백부장과 같이 주님이 기대하시는 믿음의 표본이 되기를 바라신다.
그는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의 소유자였다.
누가는 마태처럼 백부장이 주님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 그가 유대인의 장로 몇을 보내어 오셔서 종을 구원하시기를 청한다.
그들은 이 백부장의 선한 일을 주님께 고한다.
유대인을 사랑하고 회당을 지었으므로 합당한 자임을 고한다.
주님께서 그들과 같이 가실새 백부장이 벗을 보내어 자신이 주께 나아감을 감당치 못하겠고 오직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라고 간청한다.
주님이 그의 믿음을 칭찬하고 그 벗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니 종이 이미 강건하여짐을 볼 수 있다.
백부장이란 백명의 병사를 지휘하는 하급 장교를 말한다.
백부장의 지위는 지휘할 능력이 있는 자로 군대에서 가장 우수한 사람을 선택하는데 분명히 성실성과 지도력을 겸비한 인격이 요구되었다.
그는 예수의 말씀 한 마디면 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런 그의 믿음을 보신 주님께서는 그를 이스라엘에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다고 칭찬하신다.
위의 여러 사건으로 볼 때 주님은 어떤 자에게는 말씀으로 어떤 자에게는 그의 믿음과 혹은 여러 방법으로 병을 고쳐주심을 볼 수 있다.
믿음의 분량만큼 역사하신다.
두 제자
1. 베드로의 병 은사
1) 행 3:1-10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가니 거기에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가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그에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니 그가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함
2) 행 5:15"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
3) 행 9:32-35 팔 년 동안 중풍병으로 누워 있는 애니아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하니 곧 일어남
4) 행 9:36-43 욥바에 다비다란 여제자가 병들어 죽음. 베드로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일어나 앉음.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오순절에 모여 기도할 때에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임하여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하나님을 찬미하였고, 미문에 앉아 있는 앉은뱅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을 고치는 사건이다.
병든 자들은 베드로가 지나갈 때에 그의 그림자라도 덮일 때 낫을까 하였고, 도르가는 선행을 행하는 자이였다.
사람은 가장 고독하고 절망할 때 그리고 나를 내려놓을 때 주님의 사역이 시작된다.
그때가 주님을 간절히 찾고 주님의 부르심을 가장 예민하게 들을 수 있는 때이며, 우리가 약할 그때에 강해질 수 있다(고후 12:10).
하나님의 역사는 기도하고 성령이 충만한 자에게서 일어난다.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 치료하셨으나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치료함을 볼 수 있다.
2. 바울의 병 은사
1) 행 14:8-10 루스드라에 걷지 못하는 한 사람을 보고 바울이 그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고 네 발로 일어서라 하니 그가 걷는지라.
2) 행 19:12"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3) 행 28:8-9"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
사도바울은 살기가 등등하여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성도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가더니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게 된다. 바울은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더니 아나니아의 안수로 인하여 눈을 뜨고 그때부터 사도바울의 사역이 시작된다.
그는 오로지 복음을 위해 헌신된 삶이었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자신을 부인하는 희생적 삶이었다.
오늘날 주님을 믿노라 하면서 그 이름의 권세가 얼마나 위대하고 강력한 지를 모르는 것은 체험의 신앙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고 적극적인 신앙생활과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고 특히 영분별력의 능력이 간절히 필요할 때이며, 영혼과 육신의 질병이 치료되기 위한 삶의 문제를 해결을 받기 위해서는 주의 은혜가 날마다 넘치기를 기도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