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4:13-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你們奉我的名, 無論求甚麽, 我必成就, 叫父因兒子得榮耀. 你們若奉我的名求甚麽, 我必成就.)
구하면(求)
어린이가 부모에게, 신분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요구할 때 사용되는 표현, 간절하고 간곡하게 요청하다.
내 이름으로 구하면(奉我的名)
'이 이름 안에'란 뜻으로 중보자로서 예수의 이름의 능력을 증거 해 주고 있음.
주님께서는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반드시 이루어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시다. 왜 당신의 이름으로 구하라고 하시는가? 그 이름에 무엇이 있기 때문인가? 우리가 구하는 모든 것에 믿음이 없이는 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하는 이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밖에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인간에게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 명하셨고, 아담이 범죄하므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 이 죄에서 벗어날 길은 오직 우리를 대속할 구세주가 필요했다. 구약은 오실 메시야에 대해서 끊임없이 예언하고 있고 그 예언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마침내 오셨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고, 부활하셨고, 이후부터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모든 것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이것이 기도이다.
주님은 구하는 것에 대하여 공생애때에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다.
1. 요 15:16"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주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택하고 세웠다고 이렇게 하신 이유는 가서 열매을 맺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열매는 먼저 자신이 주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변하여 가는 것이다. 먼저 말씀에 순종하고 기도로 모든 일을 처리할 줄 아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며 그와 동시에 내 주위의 사람들을 같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이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흐른다.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볼 때에 하나님의 은혜와 오래 참으심은 나 개인을 보았을 때에 한평생인 거 같다. 우리는 연약한 질그릇과도 같은 존재여서 쉽게 부서지고 무너지는 존재들이다. 그런 존재들을 다듬으시는 주님의 손길은 결코 부드러운 것만도 아니다. 우리는 죽겠다고 부르짖는 경우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과 몸과 영혼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자신을 괴수 중의 괴수라 하였고, 곤고한 자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쓰셨던 자들은 모두가 자신이 할 수 없다고 내려놓을 때이다. 모세는 80세에 하나님이 쓰셨다. 그가 할 수 있다고 하는 그 시간에 하나님은 그를 양들 사이에 내버려 두셨다. 그러나 양들 사이에 있던 그 시간은 모세가 하나님을 찾아가는 시간들이었다. 그 시간이 40년이 걸렸다.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이제는 죽음을 맞이하여야 할 시간에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다. 아브라함은 75세에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나님의 지시하시는 땅으로 갔고 그는 약속의 자녀를 100세에 얻는다. 그가 완전히 하나님의 칭찬을 들은 나이는 이삭이 청년이 된 후였다. 그도 40-50이 되었을 때에 경외라는 단어를 듣는 것이다. 다니엘도 포로의 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용서하심을 바라보며 3대의 왕들이 바뀌는 시간 까지도 그는 오직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는 자였다. 믿음 안에서 끝까지 신앙을 지킨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도 그 모습을 닮아가고자 오늘 하루도 주의 은혜를 바라보며 기도한다. 그러므로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모든 것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다 주시겠다고 하신다.
2. 요 16:23-24"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우리가 기도할 때에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모든 것을 허락하시겠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기도는 믿음의 삶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되는 귀한 것이다. 그 길은 하나님께 향하는 길이고 그 길을 통해 하나님의 응답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사랑을 구하는 길이다. 기도는 주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이고 응답하시는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통로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먼저 믿음으로 구하는가 자신을 성찰하여 보아야 한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의 장이고 자식이 부모에게 요구하는 곳이기도 하다. 엘리야는 기도함으로 그가 다시 기도하기까지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아니하였다. 주님도 습관을 따라 기도하려 산에 올라가셨다. 사무엘은 기도를 쉬는 것도 죄라고 하고 있다. 우리는 무릎 끊을 때에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이 기도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사 30:1) 먹고 마시든 무슨 일을 행하든 먼저 기도하는 자세야 말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다. 먼저 하나님께 묻지 않고 행한 여호수아는 후에 힘든 일들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먼저 하나님을 찾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3. 요 14:15-16"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게 있게 하리니, "
행 2장에 보면 성령이 기도하는 자들에게 임하심을 볼 수 있다. 그들이 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에 일어난다. 성령이 임함으로 성도들은 주의 일을 감당한다. 인간적인 방법은 오래가지 못한다. 성령의 임하심과 도우심만이 우리로 하여금 성령으로 기도하게 하신다. 그런 자들이 행 1: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고 계시다. 우리가 성령으로 구하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은 주님의 이름으로 주신다. 그러므로 성령을 소멸치 않게 깨어 기도하여야 한다. 그것이 하늘 보화를 여는 것이다. 베드로는 성령이 임하심으로 그가 설교를 하였을 때에 듣는 자들이 자신의 언어로 들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 후 그는 예수님의 수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고후 5:20-21절은 하나님께서 죄가 없으신 주님을 우리의 죄의 대속물로 삼으신 것은 우리가 주님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화목하게 하시기 위함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시다. 우리는 주의 은혜로 하나님과의 막힌 담을 헐렸고, 이제는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선될 때에 우리는 자녀로서 하나님께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다.
4. 눅 11:13"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하늘 창고를 열어놓고 계시다. 우리가 받지 못함은 기도로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도하면 거기에 맞혀 행동하여야 한다. 그래서 야고보서는 '믿음이 행위와 함께 일하고 행위로 말미암아 믿음이 온전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기도는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도 있다. 거저 받는 것은 세상에 없다. 기도와 함께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는 수고하여야 하고 노력하여야 한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하였다. 적어도 그것을 얻고자 힘차게 일어나 전진하여야 한다. 앉아 있는 것으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 푯대를 향하여 노력하며 가는 것이다. 상 얻는 이는 끝까지 달려간 자에게 주어지는 면류관이다. 중간에 지쳐 쓰러져 있어도 그 푯대를 향하여 기어서라도 가야 한다. 힘을 다한 곳에 하나님의 칭찬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작도 하지 않거나 달려보지도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슬픈 것이 아닐까!
5. 눅 12:29-31"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가장 행복한 것은 주의 이름으로 구할 수 있는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이다. 기도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실행이 옮기는 그 과정 속에서도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주님은 우리가 주께 구하는 자들이 다 되기를 바라신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도 그러하시다. 죄의 속박에서 벗어난 인간들이 모든 일에 주와 함께 하며 하루하루를 감사의 생활이 넘쳐나는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다윗은 모진 인생의 풍파 속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아니하였다. 믿음은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다. 그 후 우리는 자녀로서 구할 수 있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무엇이 막혀 있는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옳다고 생각한 것이 하나님의 뜻과 대치되는지 성경을 통하여 볼 필요도 있고, 자신의 한정된 생각 속에서 말씀을 보다 보면 넓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오도하거나 잘못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6. 약 4:2-3"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나님이 계속 말씀하신 축복을 받기까지 다듬어지고 온전히 순종의 아브라함이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윗이 왕이 되기까지는 그는 오랜 연단 속에서 다듬어지고 있는 동안에도 그는 하나님과의 기도의 끈을 놓지 않았다.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기도는 호흡이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호흡을 쉬는 자들을 죽은 자라고 한다. 그 호흡이 영적으로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기도는 쉬는 죄을 범하여서는 안된다. 지금 우리는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할 수 있고 아뢰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 한 분 만으로 기뻐할 수 있다.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외면하지 아니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기쁘다.
그 속에 희망과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