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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왕상 19:4-5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by YEOLBI 2023.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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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9:4-5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天使)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천사(天使)'는

'파견하다'에서 유래. '천사', '사자'의 뜻. 여기서는 특별히 하나님의 위엄을 받은 하나님의 사자를 의미한다.

 

엘리야(나의 하나님은 여호와이시다.)는 아합왕 초기 시대 사람으로 길르앗에 우거 하는 디셉 사람이다. 그 당시는 이세벨의 영향력으로 바알 숭배가 심한 시대였다. 엘리야는 아합에게 말한다. '내 말이 없으면 수년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그것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여 내 말이 없으면이라고 아합에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에게 그릿 시냇가에 숨어 있으라 명하시고 엘리야를 위해 까마귀에게 떡과 고기를 가져오게 하신다. 그릿 시냇가가 물이 마르고 하나님은 시돈에 속한 사르밧의 한 과부에게 엘리야를 보내시고 거기서 지내게 하신다. 이 여인이 믿음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녀는 한 끼 밖에 남아있지 않은 음식을 엘리야에게 준다. 그 음식은 자신과 아들이 마지막으로 먹기 위해 남긴 것이었다. 엘리야는 그녀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먼저 음식을 만들어 나에게 가져오고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해 만들라 말한다. 여인은 이 말에 순종하였고, 그 후 그들의 가루통과 기름은 비가 오는 날까지 마르지 아니하였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삼 년이 지나고 엘리야는 아합을 만나게 된다. 삼 년의 기근동안 아합은 엘리야를 죽이기 위해 그를 찾았다. 삼 년이 지난 후 오바댜가 엘리야를 찾게 되는데 성경은 아합왕의 궁내 대신이었으나 여호와 신앙을 굳게 간직하고 있던 오바댜가 선지자 백 명을 굴에 숨기고 떡과 물로 그들을 돕고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엘리야는 아합과의 대면에서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 대결할 것을 제안한다. 그들의 대결은 송아지 한 마리씩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을 붙이지 않고 송아지를 나무 위에 놓고 자신들의 신을 부르면 불이 내려와 사르는 신앙적인 대결을 한다. 결과는 뻔했다. 그들이 아무리 울부짖어도 거짓은 바알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오직 홀로인 엘리야만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매 불이 내려와 엘리야가 쌓은 제단을 사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구경하던 백성들이 이를 보고 엎드려 하나님이야 말로 진정한 여호와이심을 고백한다.

 

삼 년의 기근동안 아합이나 백성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회개하지 아니하였고, 오직 자신들이 옳다고 여기는 데로 살았고 우상숭배인 바알을 없애지 아니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아합은 거기에 선지자들을 죽였고, 이에 오바댜가 그런 와중에서도 선지자들을 먹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하여 이스라엘이 돌아오기를 바라셨다. 그 기회가 삼 년이다. 힘들고 지친 시간 속에서도 사람들은 회개하고 돌아올 생각조차도 없고 오히려 더 악을 행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주어진 기회 속에서도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하여 자신이 진정한 구원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고 있다. 오직 하나님만이 구원의 하나님이심을 본 사람들의 모습은 어떠했던가 그들은 그것이 그냥 가십거리였을까 그중에서도 회개하고 돌아온 자들도 있었으리라 본다. 

 

아합은 자신의 아내 이세벨에게 일어난 사건을 이야기 한다. 이세벨은 화가 나서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선언한다. 그 사건은 아합이나 이세벨에게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악한 자는 그 사건 속에서 하나님께 돌아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어리석은 자는 여전히 어리석은 것인가.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여전히 원망과 불평속에서 하나님의 돌아오라는 소리에 귀를 막고 있는가. 

엘리야는 지쳤다. 그는 자신은 홀로 싸웠다고 생각한다. 용감했다. 그러나 그도 인간이다. 자신의 수고와 노력에도 변하지 않는 자들을 바라보며 회의를 느낀다. 엘리야의 기대처럼 세상이 뒤집어 진 것이 아니다. 모든 싸움 끝에 그는 여전히 홀로 있다. 삼 년의 가뭄에서도 비록 자신의 기도로 그러했지만 그는 도피생활을 하고 있었고, 도리어 엘리야는 생명의 위협이 일신에 닥치는 상황이 오고 자신감을 잃고 승리한 지금도 낙심하며 엘리야는 이세벨을 피해 홀로 떠나야 했다. 그런 그가 간 곳은 브엘세바였다. 

 

브엘세바란 어떤 곳인가?

 

1.  창 21:14"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니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더니,"

하갈은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을 낳아주었다. 그 후 사라가 이삭을 낳았고, 어느 날 사라가 보니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자신의 아들 이삭을 놀리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여 아브라함에게 고한다. 아브라함은 근심하다가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 보낸다. 그녀는 어린 아들과 함께 이른 곳이 브엘세바 광야이다. 그곳에서 물이 떨어지고 이스마엘은 관목덤불 아래에 두고 그녀는 죽어가는 아들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울부짖는다. 하나님이 사자를 통하여 응답하시는데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이 그 어린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사자가 내려와 하나님의 응답을 전한다.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니,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그리고 하갈의 눈을 밝히시어 샘물을 보게 하시고 마시게 하신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전심으로 찾는 자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아니하신다. 

 

2.  창 22:19"이에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주하였더라."

창세기 22장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모리아의 한 산에 이르고 거기서 일어난 사건을 말한다.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경외하는 아브라함이란 인정을 받은 곳이고 아브라함은 다시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응답을 듣고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주하였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후에 이삭도 야곱도 브엘세바는 세명의 족장에게 중요한 장소임을 볼 수 있다.(창 26:23, 33, 46:1)

브엘세바는 '일곱 개의 우물', '맹세의 우물'이다. 야곱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애굽에 가기 전에 들려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지낸 곳이기도 하다. 지금 엘리야는 이곳에 와서 사환을 그곳에 두고 홀로 광야로 들어가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서 죽기를 원하고 있다. 그리고 아예 들어 눕고 잔다. 그런 그에게 천사가 와서 떡과 물을 주며 먹고 마시라 권하고 먹고 마신 엘리야는 다시 들어 눕는다. 또다시 나타난 천사는 그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권하고 엘리야는 먹고 마시고 다시 40 주야를 걸어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른다. 그는 한 굴에 들어가 거기에 머무른다.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신다. '어찌 여기 있느냐.' 엘리야는 말한다. 하나님께 대한 나의 열심히 유별하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지만 오직 나만 남았고 그들은 이런 내 생명을 찾아 죽이려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친히 엘리야를 산에 서게 하시고 그 앞에서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하나님이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하나님은 계시지 아니하며 불 가운데에도 하나님이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었다. 겉옷으로 얼굴을 가린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다시 물으신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이에 엘리야는 똑같이 대답한다. '이스라엘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고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므로 오직 나만 남았고 내 생명을 찾아 죽이려 한다라고'

 

주의 열심히 사라진 것이 아니다. 큰 목표를 향하여 달려오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작은 미세한 소리에도 사람이 무너지는 경우가 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열심을 더하였고, 그 일을 완성하였다. 그리고 갈멜산에서의 이방숭배자인 그들의 선지자들을 죽였다. 이에 모든 이스라엘이 이러한 엘리야를 적어도 회개하고 돌아오는 영혼들이 있어야 함에도 그러지 아니하였고, 더구나 이세벨은 엘리야를 보면 죽이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는 모든 상황이 겹쳐 무너진다. 살아 뭐 하나 나만 홀로 남았는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친히 그를 찾아오셔서 힘을 주시고 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있어야 할 곳에 없는 엘리야에게 말씀하신다. 네가 있을 곳이 아니니 일어나 다시 가라라는 말씀이시다. 그러나 엘리야는 여전히 같은 말만 하고 있다. 자신의 생각에 자신을 갇아 버리고 앞의 모습도 보지 못하고 자신이 걸어온 자취만 바라보며 여전히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엘리야는 자신의 감옥에 갇혀 있다. 그가 지금 필요한 것은 여호수아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싸울 때에 하나님의 관심은 모세에게 있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전쟁에 이기고 손이 내려오면 여호수아가 밀리고 있을 때 힘들어하는 모세을 위해 모세을 한 바위에 앉히고 아론과 홀이 각각 모세의 한 손을 같이 들어주어 전쟁에서 이길 때까지 그 손이 내려오지 않았던 기도의 동역자 같은 마음으로 힘을 합쳐 기도하는 동역자가 필요했던 엘리야는 오직 홀로 남은 자신이 견딜 수 없고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힘들다는 표현 속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이런 시간은 길었다. 그런 그를 천사가 그리고 하나님이 친히 찾아와 힘을 주시고 있다. 일어나라 네가 아직 해야 할 일이 있다.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에는 은혜와 사랑이 넘쳐나 있다. 여전히 당신이 택하시고 선택한 자들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다윗은 날마다 힘들고 격한 세파 속에서도 밤마다 자신의 침상을 적시며 기도할 때에 그 밤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력해져 있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찾아오셔서 위로하시고 힘을 주고 계시다. 지금 우리가 어떤 사항이든 기도의 동역자가 필요하든 날마다 힘들어서 고통 속에 울부짓고 있든 아니면 아무것도 할수 없어 허공을 바라보며 한숨을 짖고 있든 하나님은 항상 우리 곁에 계시고 우리가 다시 힘을 공급받아 자신의 일을 감당하기를 원하신다. 기다리시는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은 오늘도 지쳐 날마다 자신의 침상을 적시고 무기력하여 세상과 접할 수 없는 우리에게 찾아오신다. 힘을 내거라 내가 너를 창조하였고 너를 지었나니 너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강권하라 명하신다. 

 

출구가 없는 낙담과 낙심 속에 로뎀나무 아래에서 맥없이 앉아 있는 엘리야는 오늘 우리의 모습일 수 있다. 상황에 좌절하고 환경에 회의감을 느끼고 바라볼 곳이 없고 희망도 없다고 생각되어 허공을 바라보며 막연자실한 현실 앞에 갈길을, 찾을 길이 없어 로뎀나무 아래에서 누워 고통을 씹는 시간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에 주님은 찾아와 주시고, 말씀하신다.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그리고 또 말씀하신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믿음의 사람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명을 남겼다.'라고 하나님은 자신안에 갇힌 엘리야에게 위로와 새로운 사명을 분부하신다. 

 

은혜를 주옵소서.  찾아와 주셔서 로뎀나무에서 호렙산의 동굴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그리고 모두에게 소망을 주시는 주님 오늘도 이기고 승리하는 하루가 될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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