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22:26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謙卑的人必喫得飽足, 尋求耶和華的人必贊美他, 愿你們的心永远活着.)
우리는 하루에 보통 세끼를 먹는다. 어떤 자는 살찌는 것을 막기 위해 한 끼 두 끼로 하루를 보내기도 하지만 먹을 것이 없어 먹는 것이 힘든 사람은 하루에 한 끼도 감사하며 하루를 버티는 자들도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먹지 못하면 삶에 기쁨도 없고 오직 고통과 괴로움뿐이다. 이 한 끼의 밥을 얻기 위해 우리는 하루를 수고하고 애쓴다. 사람은 여기에 만족하거나 즐거워하지 않는다. 육신의 배는 배부름으로 만족할지 모르나 그만큼 우리의 영혼도 날마다 채워지는 것이 없다면 공허하고 말라갈 수밖에 없다. 이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된다. 육신으로는 배가 부르지만 영으로는 배가 고파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진리는 시대나 환경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진리이다. 진리를 떠나서는 우리는 아무것도 아무 포만감도 느낄 수 없다. 겉은 번지르하지만 영은 피골이 상접하여 쓰러지기 일보 직전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사울은 왕권을 쥐었지만 그가 겸손을 버리고 부터는 그의 삶은 피폐해지고 모든 것이 적으로 다가왔다. 그는 하루하루가 편하지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비록 육신은 고통과 모든 압박으로부터 고통 속에 있었지만 그는 그럴수록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범죄 하지 않기 위해 영적으로 깨어있는 자였다.
다니엘은 포로의 몸이었지만 육신의 안의보다는 하나님을 찾는 시간들을 즐거워하며 어떤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는 자였다. 겸손으로 얻어지는 영의 양식은 어떤 환난이나 궁핍보다도 더 값진 것이고 소중한 것임을 안 지혜로운 자들의 행위임을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잘 알고 있다.
겸손은 11제자에게 생명도 아끼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힘을 주었고, 사도바울은 이 진리를 위해 날마다 싸우는 수고도 아끼지 아니하였다.
겸손(謙卑) 겸양하다. 자기를 낮추다(손아랫사람이 손윗사람에게 씀.)
겸손은 하나님 앞에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즉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1. 레 26:40-41"그들이 나를 거스른 잘못으로 자기의 죄악과 그들의 조상의 죄악을 자복하고(承認) 또 그들이 내게 대항하므로 나도 그들에게 대항하여 내가 그들을 깨닫고 그 할례 받지 아니한 그들의 마음이 낮아져서(謙卑) 그들의 죄악의 형벌을 기쁘게 받으면, "
'자복하고(承認)'은 던지다. 내던지다, 고백하다. 인정하다는 뜻이다.
'할례 받지 아니한 그들의 마음이(未受割禮的心)'은 변화되지 못하고 죄악 된 과거에 얽매여 있는 부패한 심령을 일컫는다.
겸손은 하나님께 회개하는 자를 가리킨다. 레 26장 1-13절은 순종하는 자가 받는 복을, 26-39절은 불순종으로 오는 저주를 말하고 있다. 본절은 비록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오는 비참한 지경에 처하여 있을지라고 회개하고 즉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면 하나님은 돌아오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회복의 은총을 베풀어주시겠다는 약속이다.
2. 시 34:2"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謙卑人)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자랑은 자신에게 주어진 어떤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과 그 하나님이 인애와('사랑하다', '인사하다'는 뜻.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한 성실한 사랑을 의미한다.) 공평과 정직으로 땅에 행하시는 분이심을 자랑하라고 되어있다.(렘 9:24)
'곤고한 자들이((謙卑人)'은 '괴로움과 압박을 당하다'는 뜻. 빈곤하고 가련하며 겸손한 자를 가리킨다.
우리나라 성경에는 곤고한 자가(困苦, 곤고, 괴로움) 자로 되어 있다. 이는 고통과 괴로움에 있는 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통하여 겸손을 배우게 된 자를 가리킨다. 겸손을 배우게 된 자는 하나님의 도래를 기다리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겸손은 오직 하나님을 자랑하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다.
3. 시 37:11"그러나 온유한 자들은(謙卑人)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平安) 즐거워하리로다."
화평으로(平安)'은 '많은 평강'을 뜻함. 이는 물질적인 부요 그 이상의 인간과 하나님,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에 기초를 둔 일반적인 의미의 안녕을 가리킨다. 성도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를 때에만 진정한 평강을 누리게 된다.
겸손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리킨다. 그럴 때에야 진정한 평강을 누리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 내 안에 평안이나 즐거움이 없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보다 더 크게 보이는 것이 없는가, 말씀을 믿는가,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 우리는 겸손히 무릎 끊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가.
4. 시 69:32"곤고한 자가(謙卑的人) 이를 보고 기뻐하나니 하나님을 찾는 너희들아 너희 마음을 소생하게 할지어다."
'곤고한 자가(謙卑的人)'은 '겸손하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고난 가운데서도 겸손하게 주를 섬기는 자를 의미한다.
우리 안에 주를 향한 겸손이 있다면 이제는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말고 담대히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라고 말씀하고 있다. 다윗은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무엇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 죄를 짓지 아니하려고 노력하였고 그러므로 항상 담대히 아뢰고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구하는 자였다. 그런 하나님은 언제나 다윗을 소생시키고 세상을 향하여 담대히 나아가게 하였다. 끝내는 민족의 왕으로 세우시고 기뻐하신 것을 볼 수 있다.
5. 시 76:9"곧 하나님이 땅의 모든 온유한 자를(謙卑的人) 구원하시려고 심판하러 일어나신 때에로다(셀라)
겸손한 자는 인내하며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를 가리킨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씀에 대한 순종이다.
6. 시 113:5-6"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누구리요 높은 곳에 앉으셨으나 스스로 낮추사(謙卑) 천지를 살피시고, "
주님을 연상케 한다. 하나님이심에도 자기를 낮춰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고,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순종하신 주님을, 그 주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주님이 빠진 설교는 힘이 없는 것이 여기에 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구속하신 구속사건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에게 있어서 겸손은 여기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 참사랑을 잊지 말자.
7. 마 11: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謙卑)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
우리에게 선한 길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가는 길이다. 주님이 죽기까지 순종하시고 복종하신 그 길은 온유와 겸손의 길이다. 그런 자가 마음의 쉼을 얻는다고 말씀하고 계시다. 그리고 이 길만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이다.
8. 빌 2:3"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貪圖虛浮)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謙卑)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
'다툼이나 허영으로(貪圖虛浮)'은 '빈', '헛된'과 '영광'의 합성어. 공허한 자랑, 칭찬받으려는 헛된 영광을 가리킴. 삼가야 할 부덕(不德)중 의 하나.
9. 약 4:6"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謙卑)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우리는 한 그릇의 밥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세상적으로 먹고 마시는 것은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지는 못한다. 우리는 우리 곁을 떠난 자들을 너무나 그리워한다. 우리도 어느 날 하나님이 부르시면 그 길을 가야 한다. 주님이 겸손으로 자신을 낮추시고 끝까지 순종하신 사건은 우리에게도 본이 된다. 자신을 낮추고 순종하며 겸손하게 자기에게 주어진 일들을 감당하며 가는 것이 겸손한 자의 자세이다. 그러므로 겸손한자는 오직 주님을 찾는 자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