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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후 4:7-10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by YEOLBI 2022.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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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4:7-10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삶이 고달프고 힘들때가 많다. 그럴 때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너무 욕심을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남보다 돋보이고 싶은 것은 아닌가 사실 그런 것이야 말로 아무것도 아님에도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보이고자 하는 삶을 살 때가 많다. 하나의 자랑이 추가되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더 많이 가져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그럴수록 하나님과 멀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중심이 하나님에서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곳으로 더 쏠려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우리가 먹고 마시든 무엇을 하든 주를 위하여 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지금 슬프던 기쁘던 어려움에 처해있든 고통과 환난에 빠져있든 하나님은 그 속에서 이기고 승리하는 하나님의 자녀를 찾고 계신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삶을 놓지 않는다면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계시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도바울이 고린도후서를 쓴 목적은 바울의 적대자들이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선동으로 말미암음에 대해 자신이 사도로 택함을 받은 자신의 소명과 권위를 밝히기 위하여 사도후 자신이 당한 고난과 역경을 잘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란 '아포스틀로스'는 '보냄을 받은 자' 어원상 사도는 특별한 위임을 받고 공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을 뜻한다.

제자란 '디쉬플루스', '마데테스'는 '배우는 자' '학생', '따르는 자' 신약에서는 사용되고 있는 헬라어 단어 '마데테스'는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주님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중에 12를 택하셔서 사도로 삼으셨다. 그중에 가룟 유다가 주님을 팔아버림으로 11 사도가 된다. 후에 제자들이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맛디아를 12번째 사도로 뽑는다. 그러나 그가 뽑혔다는 얘기 외에 그의 사역은 나오는 곳이 없다. 후에 바울이 다멕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고 그는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주님은 자신과 함께 했던 자들 중에 12를 뽑으셨다. 이로 보건대 사도란 주님과 함께 한 제자 중에 주님이 따로 특별히 택하신 자를 사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주님과 함께 하지고 않았고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고 주님으로부터 아무 배움도 갖지 않았던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사도바울은 주님과 생활하지 않았지만 그는 다멕섹에서 주님을 만났고 그 이후 철저히 개종하여 주의 일에 힘쓰는 12 사도 중의 한 사람이 됨을 볼 수 있다.

마 28: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所以你們要去, 使萬民作我的門徒)

우리나라 성경에는 누구의 제자로 만드는 것이 불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중국 성경에는 분명히 주님의 제자로 만들라고 되어 있다. 선교 현장에서 보면 모두 자신들의 제자를 만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우리는 모두 주님의 제자임을 그리고 전도한 자들도 주님의 제자들로 만드는 것이 옳다.

  사도바울은 유대주의의 사주를 받은 일부 교인들의 사도권에 대한 도전에 대하여 자신이 분명히 사도로서 택함 받은 소명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사도가 된 후 자신이 어떤 고난과 어려움을(고후 11:23-33"~~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진술하고 이들의 터무니없는 비방에 대하여 공박하고 있는 것이다.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사도바울은 선교사업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였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당한 박해를 고후 11:23-33에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고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고, 세번 태장, 한번 돌로, 세반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고,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자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고 등'을 열거하고 있다. 이럼에도 사도 바울은 말씀하고 있다. 어떠한 어려움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고 왜냐하면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를 질그릇에 비유하고 있다. 질그릇은 깨지기 쉽고 부서지기 쉬운 존재이다. 즉 다루기 힘든 존재들인 것이다. 이렇게 연약한 존재가 존귀하고 귀한 보배 즉 주님의 복음을(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고 다시 오실 은혜와 사랑과 어떤 것으로도 값을 치를 수 없는 가장 값진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이름 외에는 다른 이름으로 오는 자들은 모두 가짜이다.) 가졌음인데 이 또한 복음의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게 하고 있다. 연약한 질그릇임에도 하나님은 자신의 사람들을 들어 쓰심을 볼 수 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 전적인 사랑은 고난을 통한 영광이셨고 죽음을 통한 생명이시다. 

우리 또한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주의 뒤를 좇아가는 것이다. 사도바울 또한 그의 삶 속에서 그것을 몸소 보이셨고 엡 3:13"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주를 위한 고난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한다.

주님을 믿는 것이 장식품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으로 주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성도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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