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68:19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 셀라.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지시는'는 물건을 짊어지다. 떠맡다. 짊어지다. 업다.
시 68편은 다윗의 시이며 승리의 노래시이다. 다윗은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러면서 앞으로 일어날 전쟁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최종적으로 승리를 하여주시기를 바라 보고 지은 시이다. 다윗은 알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짐을 일시적이 아니라 지속적이며 영속적으로 날마다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짐을 날마다 지시는 축복의 하나님이심을, 그리고 그 짐을 해결해 주심으로 당신의 자녀들이 기뻐하심을 보시고 하나님도 기뻐하신다는 것을 안다.
하나님의 이러한 사랑은 우리가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태어나서 죽는 그 순간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심을 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았고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은 우리를 품으시고 먹이시고 사랑하시며 구원해 주신다.(사 46:3-4) 우리는 살면서 많은 짐을 눈앞에 둘 때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짐을 당신에게 넘기시고 당신의 자녀가 힘들어하거나 마음의 고통 속에서 삶이 찌드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신다. 우리에게 오는 짐들은 주의 은혜로 견딜 수 있는 정도이며 우리가 힘들어할 때에 힘들지 말라고 모든 환난과 고통에 동참하시어 우리의 연약함과 아픔과 슬픔을 공유하며 깊은 연민으로 불쌍히 여겨주신다. 그러므로 다윗은 자신이 어떠한 고통이나 환난이나 근심 속에도 자신의 모든 짐을 혼자 지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며 마음에 스트레스나 고통을 담아두지 않고 산사람이다.
우리는 오늘날 스트레스가 많은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참지 못하고 자신과 남에게 해를 끼치고 있다. 정보의 홍수로, 생활의 염려로, 내일일은 준비하되 염려하지 말고 주님을 믿는 다면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모든 짐을 하나님께 넘기므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감사하며 기뻐하는 날마다가 필요하다.
1) 잠 28:17"사람의 피를 흘린 자는 함정으로 달려갈 것이니 그를 막지 말지니라."
여기서 빠진 글자가 '짐을 지는', 혹은 '떠 맡은이'(사람의 피를 흘린 자의 짐을 지는) 빠졌는데 이는 징벌받기로 된 자의 곁에서 그 힘을 도울 뜻을 품어 받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도리어 해를 당한다는 의미이다. 남의 억울한 일에 참여하여 억울한 자를 올무에 빠뜨리는 일에 참여하지 말아야 함을 나타낸다.
2) 사 53:4"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당하였거늘'은 '우리의 고통을 지고' 의 뜻이다.
이사야는 52,53장에 인간의 죄악을 대속하기 위하여 감내하는 메시야의 피눈물 나는 고난과 고통의 과정을 생생하게 예언하고 있다. 이러한 메시야의 수난은 죽음으로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거룩한 의미를 지닌다. 이는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전인류의 모든 성도들에게도 동일한 도전과 소망의 메시지이다. 고난이나 고통은 누구가 피하고 싶은 단어들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어쩌면 영광의 건너편에 이르기 위해 건너지 않으면 안 되는 외나무다리인 것이다. 돌아갈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길이며 꼭 건너가야 하는 길이라면 그 앞에서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엎드려 기어서라도 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 여겨진다. 주님이 지신 고통은 우리의 질고를 담당하기 위함이시었고 우리의 고난과 고통을 대신 지심으로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하여 주신 생명이시다.
'짐'은 '무거운짐. 중임.
전인류의 짐은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에게 주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어 우리의 죄를 친히 담당하시어 죄에서 해방시켜 주셨다.
각자에게는 각자의 짐이 있다. 아브라함에게는 약속의 자녀의 짐이 있었고, 이스라엘에게는 애굽에서 고난과 고통의 중한 짐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출애굽 하여주신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짐이 있다.
1) 시 38:4"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나 내가 감당할 수 없나이다."
다윗은 주의 진노와 자신의 죄로 인해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다. 거기다 그는 건강까지 좋지 않았다. 그런 환경에서 자신의 편에 서서 자신을 도와줘야 할 사랑하는 자나 친구들조차도 자신을 멀리하는 것 또한 그에게 큰 아픔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다윗은 원망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여 구원의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다. 다윗의 태도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주의를 원망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아픔은 항상 자신의 몫이다. 같이 나눌 것 같은 자들이 오히려 더 외면하고 피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서려워하거나 원망할 필요가 없다. 우리도 다윗처럼 구원의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께만 간구하면 된다.
2) 시 55:22"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이 시는 자신이 처한 암담한 현실에서 전능하신 구원자이신 하나님께 우리의 눈을 돌리는 것이 가장 확실성있고 영원성이 있음을 노래한 시이다.
맡기라'는 전폭적으로 의지하라는 뜻이다.
다윗에게 있어서 짐은 '염려', '고통', '근심'을 가리킨다.
우리에게도 우리의 염려, 고통, 근심이 있다. 이것들이 우리의 짐이다.
'너를 붙드시고'는 주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신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염려 고통 근심을 주께 맡기면 주께서 우리를 붙드시고 모든 필요을 공급해 주신다.
마 11:28"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 셀라.
구원은 어려움을 당한 자에게 도움을 줄때 도움을 받은 쪽에서 구원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구속은 오직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것을 구속이라고 한다. 부활하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이 구속을 완성하셨고 영원한 부활의 생명을 약속하셨다.
1) 시 51:14"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 하리이다."
'피 흘린 죄'는 성경에서 피는 곧 생명을 뜻하는데(창 9:4)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하고 신성한 것으로 피 안에 있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피 흘린 죄, 곧 살인죄는 사형에 해당하는 극악한 죄로 율법에 규정되어 있다. 여기서 다윗은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죽게 한 자신의 죄를 가리켜 한 말인데 자신의 죄가 얼마나 극심한지를 너무도 뼈저리게 느낀 나머지 그로 인하여 고통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다윗은 자신의 죄악을 용서받기 위해 반복하여 간절히 몸부림치는 것을 볼 수 있다.
'주의 의를 높이 노래 하리이다'는 다윗은 하나님의 의를 통하여 사죄의 은총을 받게 되었으므로 이러한 의를 자신에게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하고 있다.
2) 요 12:47"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사람의 불신마저도 하나님의 영원하신 섭리와 목적 성취에 사용됨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에 다양하게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염려나 고통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에 따라 공급하시는 은혜는 놀랍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뿐이다.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함으로 구원의 하나님을 날마다 찬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