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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 42:11, 43:5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by YEOLBI 2022.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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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42: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 43:5)

 

우리가 낙심하고 불안해 하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의 침체된 마음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과거에 얽매어 그 상황에 갇혀 헤매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지속되다 보면 계속 가슴을 짓누르고 압박하고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므로 내일을 바라보지 못하고 지금의 상태에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맡겨버린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고통과 좌절 속에서 방황하지 말고, 이유를 찾으려고도 하지 말고 오직 신실하신 하나님을 찾고 의지함으로 자신의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주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 가장 빠르게 현재의 압박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각은 문제를 풀기보다는 구렁텅이로 더 깊이 빠지게 되고 결국에는 병이 들거나 주위를 어둡게 함으로 피차가 힘든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만을 찾고 벗어나려고 간구하는 것이 옳다.

 

낙심하며'는 걱정거리로 우울해 하다. 골머리를 앓다. 근심으로 우울하다.

바라던 일이 안 되어 실망함. 타의에 의해 완전히 짓눌린 심령의 상태.

 

1)  왕상 1:6"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그는 아도니아를 말한다. 학깃이 낳은 다윗의 네 번째 아들로 압살롬이 죽은 후 왕위 계승 문제로 솔로몬과 경쟁. 요압과 아비아달의 지원으로 반역을 꾀하였으나 실패하고 마침내 죽임을 당하였다.(왕상 2:25). 아도니아가 동원한 온갖 수단과 방법도 하나님이 예정하신 왕 솔로몬의 즉위를 막지는 못했다. 아버지 다윗은 아도니아에게 한 번도 그로 하여금 낙심하게 한 일이 없었다.

 

2)  왕상 21:5"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나아와 이르되 왕의 마음에 무엇을 근심하여 식사를 아니하나이까."

아합이 나봇의 포도밭을 사고자 하였으나  그의 거절로 낙담하여 음식을 전폐한 것을 말한다. 이스라엘은 토지가 개인의 소유이기 이전에 선조와 후손의 소유이며,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께 소속된 것으로서 그 매매가 극히 제한되었다.(민 27:1-11) 이것을 아합은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봇의 포도밭을 강탈한 것은 율법을 준수해야 할 왕이 오히려 개인의 불의한 욕망에 눈이 어두워 백성의 재산과 생명을 무자비한 권세로 약탈하는 불의를 저지른다. 일국의 왕이 개인의 포도원을 탐하는 모습은 졸장부의 모습이며 거부당하자 유치한 모습으로 불쾌감을 나타낸 그는 소인배에 불과하다. 

 

3)에 6:12"모르드개는 다시 대궐 문으로 돌아오고 하만은 번뇌하여 머리를 싸고 급히 집으로 돌아가서, "

'번뇌'는 '슬퍼하다', '곡하다'는 뜻. 충격과 좌절감으로 인해 깊은 시름에 빠짐을 말한다.

악인의 전형적인 종말로 자기가 판 무덤에 자기가 빠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모르드개를 처형하기 위해 왕궁으로 향하던 하만은 모르드개를 존귀케 하는 일에 솔선수범하게 되며 에스더의 연회 참석 후 더욱 교만해진 하만은 사태의 추이를 모른 채 자기 착각 속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는 모르드개를 달기 위해 자신이 만든 나무에 자신이 달려 죽게 된다.

 

세 인물을 통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남을 해하고자 한 교만한 마음이 결국은 자신의 머리로 돌아오는 것을 볼 수 있다.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자신에게는 근심과 걱정거리가 되고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아니하였을 때에 자신에게 재앙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주와 동행되는 삶 속에서 가져서는 안 되는 마음을 품는 것도 큰 죄임을 알 수 있다.

 

불안해'는 번민하여 초조해지다. 마음 졸이다. 번민, 초조.

 

1)  민 21:4"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길로 말미암아'는 가까운 길 대신에 에돔을 둘러가는 먼 길을 택하였기 때문이란 뜻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목전에 두고도 계속적인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자신들의 사악한 본성을 들어내면서 징벌과 회복이 반복되는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2)  시 77:3"내가 하나님을 기억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셀라).

고난의 심연 속에 허덕이는 시인의 고결한 영적투쟁의 현장을 그린 시로서 그가 처한 암담한 상황과 극도로 피폐해진 영혼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 그는 상한 심령으로 절규하며 하나님께 부르짖다가 과거에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행적을 기억하고 이런 시련 속에서도 낙망치 말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함을 강하게 주지 시키고 있다.

 

3)  렘 4:19"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 이는 나의 심령이 나팔 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

예레미야는 이미 묵시를 통해 대적의 파괴성과 잔인성을 보았으며 이로 인해 가슴이 미어지는 고통에 사로 잡힌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가 더욱 슬프고 아팠던 것은 지도자들은 불법을 자행하고 선지자들은 거짓평화를 예언하며 분별없는 백성들은 우상과 방탕과 안일 속에서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라 자위하고 있었다. 이에 괴리감과 허탈감 속에서 자신의 처지와 지도자와 선지자들과 백성들의 심판의 임박성에서 자신의 소명을 앞에 두고 괴로워하는 예레미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소망'은 우러러보다. 바라다. 삼가 기다리다. 존경하며 따르다.

사울의 칼을 피하여 도망다니는 다윗은 하루하루가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예루살렘을 그리워하며 돌아가 하나님께 예배드리기를 간절히 갈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영육 간에 고통과 환난이 엄습해오고 힘든 상황에서도 왜 주님을 믿는 우리가 낙심하고 불안해 하는가 라고 자신에게 자문해 보고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함께 하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오직 하나님을 바라고 소망을 두고 그런 하나님을 찬양하고 구원을 갈망하는 진실된 다윗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다.

 

1)  대하 20:12"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하고,"

여호사밧 왕이 모압과 암몬의 연합군이 쳐들어옴에 그는 인간적인 방법보다 먼저 자신과 백성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하나님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한다. 

결과는 모압과 암몬의 연합군이 서로 내분이 일어나 상호 살육함으로 자멸하고 말았다.

 

2)  시 25:15"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다윗의 시로 1절부터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라고 기도하고 있다. 모진 환난과 고난 속에서도 원수들의 포위 속에서도 다윗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그의 눈이 하나님께 고정되어 있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3)  히 12:2"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세워진 장애물이 있다 할지라도 오로지 소망과 인내함으로 신앙의 경주에만 매진하기를 당부하고 있다. 비록 고통스러워 낙담될 때에는 우리를 위해 친히 십자가에 달려 돌아기시고 부활하사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지켜보시고 계시는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새 힘을 얻을 것을 권면하고 있다.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1)  신 26:19"그런즉 여호와께서 너를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사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삼으시고 그가 말씀하신 대로 너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친히 그의 소유주가 되셔서 그 생을 책임져 주신다.

 

2)  대상 16:35"너희는 이르기를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여 만국 가운데에서 건져내시고 모으사 우리로 주의 거룩한 이름을 감사하며 주의 영광을 드높이게 하소서 할지어다."

다윗의 송축 시로서 언약궤의 예루살렘 안치로 그는 하나님에 대하여 감격이 절정에 달한 다윗의 찬양 시이다. 자신의 세상적 통치는 공의로운 하나님 통치의 대행적 도구일 뿐이라는 철저한 하나님 중심적 의식에 기반한 그의 겸손한 인격을 드러내 주고 있다.

 

3)  엡 1:6"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져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성도들의 구원은 완전하고 불변하다. 왜냐하면 삼위일체 하나님이 구원을 우리에게 적용하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마땅히 주 안에서 주의 은혜와 영광의 찬송을 거룩히 행할 의무가 있다.

 

사람은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도 낙심하거나 불안해 하는 존재들이다. 어느 누구도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자는 없다. 그러나 주님을 영접한 우리에게는 얘기가 다르다. 항상 우리의 삶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과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주와 같이 걸어가는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주 안에서 이 낙심과 불안을 극복하고, 극복으로 끝나지 않고 전진하며 발전하며 주의 도우심으로 이기고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윗이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의지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았듯이 성도들의 삶도 '오직 주'를 잊지 말고 지금 처한 상황에서 낙심하거나 불안해하지 말고 내일을 약속하신 주의 십자가만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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