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似乎憂愁, 却是常常快樂的; 似乎貧窮, 却是叫許多人富足的; 似乎一無所有, 却是樣樣都有的.)
근심하는 자 같으나(似乎憂愁)
似乎: 마치....같다. ...인 것 같다.
근심(憂愁) 우울하다. 근심(걱정)하다.
1) 창 21:11-12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憂愁) 되었더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憂愁) 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아브라함의 신앙은 창 12,22장을 보면 순종과 헌신과 믿음을 빼놓을 수 없다. 거기에 후손의 약속까지 그는 확실히 믿었지만 인간적인 기다림에 지친다. 사라의 권고로 사라의 여종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는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하나님이 허락한 자녀가 아니다. 하나님은 오직 사라의 몸에서 나는 약속의 자녀 이삭을 말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한 아브라함의 성급함은 창세기를 거쳐 오늘날에도 이삭의 후손과 이스마엘의 후손의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삶을 살아간다면 큰 근심이나 걱정거리가 없는데 인간의 기준으로 판단한 어떤 결정들은 그것이 씨앗이 되어 끊임없이 올무에 빠뜨리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브라함의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오늘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약속은 근심이나 어려움이 없지만 사람의 생각에서 벌어진 일들은 근심을 낳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본절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시고자 하시는 일의 우선을 먼저 떠오르게 하심을 볼 수 있다.
인내하여야 한다. 보통 기다림이란 쉽지가 않다. 하물며 힘듬속의 인내는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같이 네 민족이 많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지만 기다리고 인내하는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들의 시간대에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가 본토 아비 집을 떠난 것이 75세이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가 그 땅에 거한 지 10년 후인 86세에 이스라엘을 낳는다. 그리고 이삭은 100세에 얻는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자녀가 나기까지는 25년이란 세월이 흘려야만 했다. 기다리는 아브라함 편에서는 늙어가는 자신과 사라를 바라보며 조급한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모세가 쓰임 받는 시간은 80세였다. 지금은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기다리는 자들에게는 하루가 천년 같은 조급함과 걱정이 우선시될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차분하게 당신의 시간 때을 기다리시는 분이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
2) 삼상 15:11"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憂愁)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후회'는 '슬허하다', 불쌍히 여기다'는 뜻. 인간의 범죄를 심히 불쌍히 여기며 안타까워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슬픔을 뜻한다.
사울의 불순종은 하나님과의 완전한 단절을 초래했다. 이에 사무엘은 사울이 회개의 마지막 기회를 상실한 것에 대하여 근심하며 온 밤을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울 다음 사람을 준비하고 계셨고, 그리고 이루심을 볼 수 있다. 그 사람이 다윗이다. 다윗도 압살롬의 사건으로 근심하며 슬퍼한다.(삼하 19:2)
3) 시 6:7"내 눈이 근심(憂愁)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
시 31:9"여호와여 내가 고통 중에 있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근심(憂愁) 때문에 눈과 영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둘 다 다윗의 시이다. 그가 얼마나 고통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자신이 당한 고통이 너무 켜 그 근심이 눈을 쇠하게 하고 영혼을 쇠하게 하더니 몸까지 약화시키고 있음을 얘기하고 있다. 그러므로 근심은 우리의 모든 것들을 약화시키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고난과 아픔과 근심의 골짜기가 깊을수록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의 감사함이 더 높아지는 신앙의 역설을 볼 수 있다.
항상 기뻐하고(却是常常快樂的)
却是: 오히려. 도리어. 그런데. 그건 아무래도. 어느 쪽인가 하면.
기뻐하고(快樂) 즐거움. 쾌락.
1) 삼상 2:1"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快樂)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뿔'은 권력을 상징한다. 자신의 실추된 명예가 다시 세워졌음을 의미한다.
'즐거워(快樂)'은 '덩실덩실 춤추며 기뻐한다'는 뜻. 특히 어떤 싸움이나 시합에서 이겨서 뽐내는 것을 말한다.
2) 대상 16:31"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快樂)하며 모든 나라 중에서는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통치하신다 할지로다."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옮긴 후 신앙적으로 감격한 다윗의 찬양 시이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과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을 찬양하고 있다.
3) 시 13:5"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快樂)."
이 시는 다윗이 오랜 환난 가운데 드린 기도이다. 다윗은 계속되는 악인의 압제를 호소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한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오랫동안 고통을 허용하신다. 그 이유는 그 고통을 통해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하고 발전 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통이 올 때에 불평하거나 원망하거나 특히 포기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조용히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옳다. 우리의 믿음도 고난 중에 기다릴 때 나타나기 때문이다. 자신이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하나님의 사람인지 볼 수 있는 기회이고 주의 기다림을 기다린 후에 오는 축복을 받을 준비와 그 축복을 잘 못써서 넘어지는 일이 없기 위해서는 훈련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므로 우리의 성급함은 뒤로하고 오직 주의 은혜로움만을 믿음으로 기다리는 것이 하나님의 훈련에 참여와 받을 수 있는 그릇이 되기 위한 시련의 시간들이기 때문이다.
한나나 다윗이나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임을 잘 알고 있다.
가난한 자 같으나(似乎貧窮)
貧窮: 가난하다. 빈곤하다.
1) 시 41:1"가난한(貧窮)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가난한 자(貧窮)'는 '힘없는', '연약한', '가냘픈'으로 빈곤이나 질병으로 인하여 바싹 마르거나 도움받을 곳이 없는 자, 열등한 환경에 처하여 이웃의 도움이 필요한 자를 가리킨다.
'보살피는'는 무시하거나 무관심하거나 혹은 굳은 마음이나 냉정한 마음이 아닌 동정의 마음을 가지고 가난한 자를 돌아보는 자를 가리킨다.
만일 우리가 도울 능력이 있는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를 외면하거나 모른 척한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이다.(약 2:15-17) 나눔의 생활이 필요함을 말씀하고 있다. 도움에는 물질적,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당하는 자에게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들을 제때에 적용함으로 주의 날에 하나님이 그를 건지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시다.
2) 시 49:2"귀천 빈부를 막론하고 다 들을지어다."
3) 고후 8:9"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주님의 성육신은 우리를 위한 대속적 죽음을 말하고 있다. 주님은 영원한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면서도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낮아지심으로 가난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희생적인 고난의 십자가를 지시므로 구원을 완성하셨고 우리로 하여금 주의 구속적 사랑을 본받게 하려 하심을 볼 수 있다.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却是叫許多人富足的)
1) 고후 9:11"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富足)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주님이 고린도 교인들을 부요하게 하심은 그들로 하여금 가난한 자들을 돕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들이 이러한 부로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도우므로 자신에게는 의가 되고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를 돌릴 것이기 때문이다.
2) 딤전 6:17"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富足)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정함이 없는'는 불확실한. 여기서는 지속적이지 못한. 일시적인, 물질의 유한성을 지적하고 있다.
바울은 재물에 대하여 부자들에게 교만하게 행하지 말 것을 권면하고 있다. 왜냐하면 재물은 불확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확실한 모든 것을 풍족하게 주시고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기를 권면하고 있다.
3) 약 2:5"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상속' 몫.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 또는 상속분, 기업, 분깃을 말한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에게 천국 백성이 되게 하는 소망을 품게 하셨다. 가난한 자가 다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붙들림 받고 오직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대로 지키려고 하는 자들을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면이나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거나 보지 말고 오직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유업을 바라보며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似乎一無所有)
一無所有: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무일푼이다. 빈털터리다.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却是樣樣都有的.)
樣樣:무엇이나 모두. 형형색색. 각종.
고전 3:21-23"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생명'은 문자적으로 육신의 생명보다 높은 '내적 생명', 곧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받은 자가 누리는 영적인 생명을 가리킨다.
바울은 인간의 지혜나 그가 행한 업적을 크게 보고 그들을 섬기거나 그런 것들에게 영광을 돌려서는 안 됨을 설명하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구속받은 교회에 속한 것이지 교회가 사역자에게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목회자를 우상시함으로 서로가 올무가 되기 때문이다. 오직 성도들이 그리스도에게 종속되어 있을 때 그 가치가 인정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주님은 완전한 사랑과 순종을 이루셨고 하나님의 온전한 뜻으로 이루신 분이시다.
이런 까닭에 바울은 주님과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기꺼이 고난도 함께 받겠다고 고백하면서 성도들에게도 이것을 촉구하고 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후에 소유나 무소유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오직 주의 복음을 위해 애쓰며 수고한 신실한 하나님의 일꾼이다. 그는 주님의 일을 담당할 때에 주님이 필요한 모든 것을 때에 따라 공급해 주심을 믿고 살았다. 우리 또한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 잊지 말것은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심을 모든 만물을 만드신 그분을 우리 구주로 고백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