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可見信心是與他的行爲幷行, 而且信心因着行爲才得成全)
可見~~... 임을 알 수 있다....으로 볼 것 같으면.... 임이 분명하다.(앞의 내용을 받아, 아래와 같은 판단, 결론을 내릴 수 있음을 나타냄.)
而且 그 위에(도). 또한. 더욱이. 그뿐만 아니라.
네가 보거니와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신득의(以信得義)를 강조하며 행함은 구원과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에 대하여 야고보는 신앙에 오직 믿음만을 강조한 자들에게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이 행동으로 실천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심을 아브라함과 기생 라합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믿음과 행함은 상호 보완 작용을 하며 우리가 가진 목표에 달성하기 위해서는 같이 병행해야 함을 역설한다.
따라서 그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며 또한 믿음이 없는 행함도 올바른 행함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믿음(信心)
이신득의(以信得義), 이신칭의(以信稱義).
1) 롬 3:28"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稱義)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의롭다 하심을(稱義)'은 사실 의롭지는 않지만 의롭다고 인정해 주는 것을 뜻한다. 신학적으로 '칭의' 또는 '의인'이라고 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사역을 믿는 인간을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것'을 가리킨다.
'칭의'는 죄의 보편성으로 인한 인간의 자력 구원의 절대 불가능성,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예수의 대속적 사역으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인간이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된다. 성경에서 최초로 믿음을 통해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는 아브라함이다. 그러므로 이신득의의 사상은 율법 이전부터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의로움이란 사람이 행위로써 달성되는 목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임을 강력하게 보여준다.ㅣ
2) 롬 4:18"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을 믿는 모든 무리에게 하나님의 자녀 됨의 축복은 어떤 혈통이나 신분에 제한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는 모든 사람 모든 민족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3) 롬 10:9"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하나님의 구원은 사람의 의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의에 의하여 얻어지는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구원을 얻는 방법은 오직 주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그 은혜를 받음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4) 갈 5:5-6"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 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중국 성경에는 오직(惟獨)이라는 단어를 써서 믿음뿐이라고 말씀하고 있다.(오직 믿음뿐이다.)
우리는 율법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은혜의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로 하여금 오직 주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다 칭함을 받게 하셨고 그리고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시고 우리에게 성령님의 임재를 요구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 안에서 완전한 구원을 기다리는 자들이다.
5) 히 3:14"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확실한 것'은 '테스 휘포스타세오스'. '본체', '실상'. 여기서는 경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의 실체를 가리킨다.
오늘 지금 이 시간 우리는 주님께 순종되어야지만이 내일의 순종도 보장되고 그러한 삶이 이어질 때 구원에 확신을 가지 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각자의 죽음에 이르는 그 시간까지 끊임없이 이어질 때만이 참 믿음의 신앙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의 하루의 흐트러짐이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러므로 부딪치는 문제마다 순간순간 기도로 풀어나가야 한다.
함께 일하고(幷行) 동역자. 상호 보완 작용을 하다. 어떤 정해진 목적 달성을 위해 기여하다.
행함과 믿음이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라 영적 생활에 있어서 행함은 믿음의 외적 결과 즉 열매임을 알 수 있다.
행함(行爲)
행함으로 의롭다 칭함(行爲稱義)
선한 행위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이 들을 때에는 냉정하고 말이 안 된다고 생각되는 부분일 수 있다.
너무 기독교인들은 독선적이지 않냐 하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잊어서는 안 되는 게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다.
우리는 부모를 통하여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과 그분들의 권위를 볼 수 있듯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더 강렬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분을 홀대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무소부재 하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을 향하여 경건과 감사와 같은 사랑으로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시기를 바라신다.
그래서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이다. 선한 행실, 선한 구제자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였을 때 주어지는 호칭이다. 세상 사람들이 행하는 구제나 봉사는 선한 단어를 쓸 수 없다. 그들은 이미 자기을 들어내고 행한 행동이므로 자기의 행의대로 자기 상을 스스로 받은 자이나 주 안에서 행한 자의 상은 하나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1) 약 2:21"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行爲稱義) 받은 것이 아니냐."
야고보는 오직 믿음만 주장하는 자에게 구약의 실제적인 인물 아브라함과 기생 라합의 예를 들어 행함을 거부하는 자들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야고보는 바울의 로마서에서 주장하는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에 대해 반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울이 주장하는 믿음의 본질을 인정하면서 믿음의 행위는 믿음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창 22장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인정된 장이다.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믿음으로만 받고 행위가 없다면 믿음의 조상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이삭을 드리기로 실천하고 그것을 행위로 옮겼을 때에 아브람이 비로소 아브라함이 되는 것이다.
2) 약 2:25"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行爲稱義) 받은 것이 아니야."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行爲稱義)' 올바른, 공의로운, 의롭지는 못하지만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야고보는 아브라함 다음으로 기생 라합을 예로 들고 있다. 정탐꾼들의 부탁에 라합이 알았다고 하고 행위가 없었다면 그녀도 여리고가 무너졌을 때 같이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그녀는 정탐꾼들들 숨겼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게끔 도왔다. 그녀의 도운 행위가 없었다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수 2:8-13, 히 11:31)
그녀의 이러한 행위는 가족을 살리고 예수님의 족보의 한 여인으로 조상이 되었고 신앙의 모범적인 인물로 기록되었다.
행함은 믿음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이다.
따라서 선한 행위가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며 그러한 믿음은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입으로 주여 주여 부르는 자와 같을 뿐이다. (마 7:21)
성도는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주님이 말씀하고 계시는 모든 말씀을 순종함으로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 믿음의 진정성은 성립될 수 없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로보건대 주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한 자는 구원에 이른다. 주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였다는 것은 믿음을 수반한다. 믿음 없이는 구주로 영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믿음에는 행함이 따르는데 즉 예배, 선교, 봉사, 구제, 등 이런 행함이 없다면 믿음이 온전하여지지 않는다. 왜 온전하다는 표현을 섰을까! 주님이 온전하기 때문에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주님은 요구하신다. '내가 온전하니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이는 주님이 계신 곳에 가기 위해서 우리도 온전하라고 말씀하시는 데 주님이 재림하실 때 그 잔치에 참여할 수 참여권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믿음으로는 구원에 이르지만 믿음으로 행한 일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도 온전한 자가 되어 들어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기생 라합이 그랬고, 이제는 우리가 그래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