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42:1-5
(고라 자손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切慕)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切慕)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渴想)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마스길의 뜻 '깨닫다', '생각하다'는 뜻. 의미가 분명치 않는데, 주로 교훈적이거나 명상적인 시편의 제목으로 사용되고 있다.
시 42편은 고라 자손 중 한 사람이 성전에서 봉사하던 때를 그리워하며 쓴 시로서 그들은 레위인으로서 회막이나 성전 입구를 지키는 문지기였으며(대상 9:17) 성전의 찬양 대원이기도 하다.
이 시는 하나님을 기다리는 영혼의 갈증을 목마른 사슴에 비교하면서 강조한 시이다.
사슴 : 숲에 살며 겁이 많은 동물로 묘사된다. 눈망울이 매우 맑은 것이 특징. 덕분에 연약하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1) 사 35:6"그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 한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사슴은 현재에 팔레스틴에서는 멸종되었으나 고대에는 '담황 사슴'이 있었다. 율법에 식용이 허락된 동물이다.(신 12:15)
절름발이가 완전히 치유되어 사슴처럼 뛰 놀 수 있음을 비유로 말하고 있다.
2) 합 3:19"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힘'은 '강하게 하다'에서 파생. 주로 삶에 있어서의 생동력을 묘사하는 데 쓰였다.
하나님은 하박국의 모든 것이었다.
하나님으로 인해 그는 위험한 처지에서도 신속히 이동할 수 있었고 높은 곳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갈급(切慕) 간절히 생각하다.
'열망하다', '창백해지다'는 뜻. 얼굴이 수척해질 정도로 심히 갈망하다는 의미이다.
시 63:1"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切慕)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에 의해 쫓겨가는 비참한 상황에서 사막지대를 방황하는 자가 물을 갈급해하듯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자신의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내어 맡기고 있음을 암시한다.
갈망(渴想)은 '목이 타다', '원하다'의 뜻. 사막을 여행하는 자가 갈증으로 물을 찾듯 목표의 성취를 간절히 염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삼하 23:15"다윗이 소원(渴想)하여 이르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하매, "
다윗은 블레셋과의 전투 중 고향 근처에 이르게 되었고 고향의 향수로 인해 고향의 우물물에 대한 갈증을 애타게 호소하게 되었고 이를 귀담아들은 삼인이 자발적 충성과 헌신으로 베들레헴 우물물을 길어왔다.
다윗의 두 번째 세 용사의 투철한 신앙 열정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소유하게 한다.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이는 조서적인 질문으로 말 2:17절이 생각난다.
겔 22:26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가르침과 잘못된 행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가볍게 취굽당하므로 이방 사람들에게까지 조롱의 대상으로 만드는 사건을 보며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행실 하나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눈물을 매일의 식사로 취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없다는 조롱에 대해서 비참한 심정으로 심한 고통의 마음을 가졌음을 나타낸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성일'은 '원 안에서 돌다', '성스럽게 행진하다', '춤춘다'는 뜻. 이것은 뛰고 춤추면서 축제를 지키고 성일을 축하하는 행위를 말한다.
'하나님의 집'은 '성막', '성소', '하나님이 임재하여 계신 집'을 가리킨다.
시인은 과거의 하나님의 집에서 성도들과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양하며 즐겁게 예배드리는 것을 회상하며 마음이 상함을 나타낸다.
가장 기본적인 생활이 이렇게 그리울 수가 없다.
마음껏 웃고 떠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모든 성도들이 한마음으로 기도와 찬양으로 예배드리는 이 간단한 생활이 현재 닥친 사건으로 인해 쉽지 않음에 마음이 무겁다.
네가 어찌하여 낙심(憂悶)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煩躁)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낙심(憂悶)은 '가라앉다', '아래로 던져지다'는 뜻.
의지가 꺾여 그 자리에 주저앉듯 절망 상태에 빠짐을 의미한다.
슬픔의 무게가 너무 큼을 나타내 주고 있다.
5절과 11절은 내용이 비슷하다.
다른 점은 11절은 하나님의 도우심에 더 확신을 갖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갈망으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 상태에서 오는 위로를 노래하고 있다.
침울한 상황에 계속해서 머무르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대조해 가면서 스스로 위안과 용기를 찾기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상조회에 다니는 동생이 있다.
그녀는 돌아가신 분들을 염(殮)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녀에게 물었다.
'요새 코로나로 돌아가신 분들은 어떻게 하니, '
'돌아가시면 창문을 통해 고인을 보게 하고는 바로 화장터로 보낸다고 한다.'
관에는 고인이 없고 시신 없이 장례를 치르게 되는 것이란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듣고 참 비참하다는 생각을 가졌다.
옛날의 자유로웠던 시간들을 생각하며 그런 시간들을 감사할 줄 몰랐던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해보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여전히 찬송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