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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막 7:32-35 에바다(열리라)

by YEOLBI 2023.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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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7:32-35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按手)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開了吧) 뜻이라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주님께서 병자를 고치신 것 중에 귀먹고 말 더듬는 자를 가장 구체적이지만 희한하게 고치시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주님은 두로 지경에서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고치신 후에 갈릴리 호수에 이르신다. 거기서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자를 예수께 데리고 나아와서 안수하여 주시기를 구한다. 안수를 구하였다는 것은 안수는 병을 고치는 능력이 있음을 그들도 인식하고 있었다. 

 

안수란? '싸마크 야드 알'로서 성별(聖別)이나 죄의 전가를 의미하는 의식 행위라고 되어 있다.

按 (누룰 안)

手 (손 수)

 

구약에서의 안수는?

 

1.  성별(聖別)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스라엘을 이끌고 들어갈 여호수아에게 후계자로서의 성별 할 때 그에게 안수하였다.(민 27:18, 23, 신 34: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안수함으로 그의 지혜와 권위가 여호수아에게 전달되었다.

 

2.  죄의 전가

모세 오경에 보면 (출 29:10, 레 1:4, 4:8, 민 8:12) 제사장이 희생 제물의 머리 위에 안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대속의 전가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죄의 전가로서는 레위기 24장을 보면 하나님을 저주하는 자의 말을 들은 자들이 모두 그를 돌로 치기 전에 그의 머리에 안수하고 돌로 친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그의 모독하는 말을 들음으로 말미암아 야기된 죄책을 전가하기 위한 것이었다. 

 

신약에서는?

병고치는 치유를 수반하는 행위와 축복의 통로로 안수하였다. 예수님은 많은 자들에게 그들의 믿음대로 때로는 말씀으로 때로는 안수로 치유하시는 장면들을 많이 볼 수 있고, (마 9:18, 막 6:15) 초대교회의 지도자들도 안수로 병을 치유하는 것을 볼 수 있다.(행 9:12,17, 28:8) 그 당시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을 받고 신자들이 많아졌지만 안수가 성령을 받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었고 그 안수를 받은 자들의 마음이 얼마나 사모하고 믿음 안에 있는가이다.

오늘날은 교회의 대표가 하나님에 의해 실제적으로 성취되는 치유의 통로임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조심하여야 할 것은 나에게 안수하는 자의 진실성이다. 진정으로 주님의 말씀과 신실함으로 상대를 안수하느냐 자신의 거짓된 모습으로 안수하느냐에 있다. 안수하는 자가 거짓된 자라면 안수를 받지 않는 것이 옳다. 그러므로 안수를 받기 원한다면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목회자에게 받아야 마땅하다. 함부로 아무에게나 머리을 들이밀고 안수를 받는 것은 피하여야 한다. 오늘날은 성직자의 임명식때와 새로운 신자들에게 행하여지고 있다. 

 

귀먹고 어눌한 자는 피동적으로 주님앞에 서게 된다. 이는 그에게는 자신의 고침에 대해 전혀 의지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듣는 것에 미흡하고 들었다 하더라도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언어 능력도 없기 때문이므로 주님의 복음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듣지 못하였기 때문에 말씀을 받아들이고 신앙을 갖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안수로 끝날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게 볼 수 없는 주님의 희한한 행동이 업그레이드된다. 주님은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신다. 그에게 안수로 하였다면 그는 아무 느낌 없이 아무 의식 없이 받아들여졌을 것이지만 주님이 직접 양손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대시므로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방법으로 그의 질병뿐만 아니라 영을 깨우는 행위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에게 직접적인 손을 댐으로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그의 고통에 동감하시는 이런 행위는 사랑의 주님의 표시였고, 그에게는 피동적이 아닌 능동적인 신앙인으로 자라기를 도와주는 행동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열리라(開了吧)

주님의 한마디에 병자가 고침을 받는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열리라 우리의 영적인 마음의 눈이 열려서 우리을 위하여 간구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병자가 주님의 한마디에 병이 나아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전하는 자가 되었듯이 우리가 오늘 귀먹고 말 더듬는 자가 아닌지 보아야 한다. 복음 듣기를 거부하고 듣더라도 자신에게 달콤한 말만 받아들이고 있는지 볼 때 우리는 먼저 열리라는 영적으로,

 

첫째로는  영적으로 귀먹어리가 듣는 자가 되어야 한다.

막 4:23"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들을 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 들으라 이는 똑바로 주의 말씀을 깨달아 알라는 뜻이다.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인도하는 주의 말씀이다. 주의 뜻을 알고 순종하는 길로 가는 우리를 주의 말씀으로 인도하는 길잡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떠난 말씀은 다 거짓이다. 시 119편 105"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둘째로는 마비된 심령의 혀가 진실된 말을 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창 19:14"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거짓말, 허망한말, 악한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소돔과 고모라에서 하나님께서 이 땅을 멸하심을 듣고 두 사위에게 말하는데 사위는 이 말을 농담으로 여겼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의 평상시의 모습에서 두 사위는 롯의 진실을 여전히 농담으로 여긴 것으로 본다. 

 

셋째로는 심령으로 귀먹고 어눌한 자는 회개하고 돌아가야 한다.

고전 10:13"사람이 감당할 시험(試探)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試探)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試探)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開一條出路)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피할 길을(開一條出路)은 우리가 주님과 멀어지고 주님의 은혜의 길을 벗어났다면 주님은 다시 돌아올 길을 우리에게 열어놓아 주셨다. '열려라'는 먼저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가는 길이다. 범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오래 참으시고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은 그럴지라도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그것이 회개이다. 회개는 주님의 길에서 벗어나 다른 길을 걷고 있을 때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 깨달아질 때 그 잃어버렸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주님을 잃어버렸던 그 자리에 주님은 여전히 기다리고 계시다.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인내로 사랑으로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주님의 사랑을 말로 표현 못할 은혜임을 알아야 한다.

 

넷째로는 회개한 자는 모든 것을 주께 맡기는 믿음의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시 37:5"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

회개하고 돌아온 자는 이제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주님께 맡기면 된다. 나의 나 된 것은 주님의 은혜이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이땅에 오셨고, 우리을 위하여 대속죄로 속량하심으로 우리을 죄로부터 해방시켜 주신 분이시다. 우리는 이제 믿음으로 주님께 우리의 하루하루를 삶을 나의 앞날을 맡기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염려할 필요 없고 주가 주시는 담대함으로 오직 십자가만을 바라보며 걸어가면 된다. 주님을 의지하면 주가 이루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심을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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