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5:21-24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히 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동행(同行)이란 나와 같이 길을 가는 사람. 목적지가 같은 사람들끼리 같이 가는 것.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365세에 하나님이 데려가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365세라는 것을 보면 365일 하나님과 동행하라는 즉 하루도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365일을 하나님과 동행(同行)하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고통중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출애굽 하셨다. 그들이 홍해를 건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은 광야길로 들어섰고, 광야를 걷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보호하시며 하루 24시간 같이 하셨다는 것을, 그렇게 장장 40년간을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목적을 이루기까지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그렇게 같이 하신 것이다. 동행(同行)은 같이 걸아가는 것이고 같이 어려움과 고통과 즐거움을 같이 나누는 것이다. 동행은 바로 그런 것이다. 같이 있고 같이 먹고 마시며 같이 한 마음으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애쓰고 수고하며 같이 닮아가고 같은 모양으로 영과 육과 마음이 같아지는 것을 말한다.
에녹은 그렇게 하나님과 같이 동행(同行)한 자이다. 이에 히브리서는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同行)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다. 즉 그의 마음이 하나님과 닮아가고 있었다.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거나 말씀에 불순종하지 아니하고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同行)하며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린 그의 모든 시간들을 우리는 볼 수 없고 알 수 없지만 이스라엘에게 항상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그들과 동행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민족이 에녹과 같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증거를 받는 민족이 되기를 바라신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구체적으로 율법을 주셨다. 율법은 지키라는 것이다. 장식품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기본법을 주신 것이다.
그렇게 이스라엘이 광야 40년을 하나님과 동행(同行)한다. 우리는 여기서 온전히 동행(同行)하는 몇사람을 볼 수 있다.
1. 모세는 애굽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나온 자이다. 그는 80세에 부름을 받고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킨 장본인이다. 성경은 그를 온화하고 하나님을 경외한자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본 유일한 자이다. 우리가 아는 광야는 물과 먹을 것이 부족한 곳이다. 그는 대민족을 이끌고 나오면서 기도하는 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먼저 인간의 기본적인 먹고 마시는 문제는 모든 문제을 야기시킨다. 기도의 용사 모세는 모든 일을 기도로 처리하며 하나님을 닮아가는 자였고 하나님은 친히 그에게 십계명을 만들어 주셨다. 모세는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였고, 믿음의 사람이었다. 지도자로서 그는 므리바사건으로 가나안을 밟지 못한다.
2. 여호수아는 광야 생활동안 모세의 신뢰을 받는 동역자였다.. 그는 갈렙과 유일하게 20세 이상의 장정으로 가나안을 밝고 그곳에 들어가 모세 다음으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다. 12명의 정탐군을 가나안에 보낼때에 갈렙과 같이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신뢰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회막에서 관리자로 모세을 도왔고,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있는 40일 동안에도 그곳에 머물며 모세가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전쟁의 용사로 싸웠고, 후에 모세는 여호수아를 그의 사역을 완수할 후계자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았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는 믿음의 사람들인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지도하에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갔다.
3. 20세이상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눈으로 보면서도 이미 굳어진 마음이 순종과 불순종의 사이에서 이미 불순종하는 것에 익숙해 있던 자들이었다. 광야 40년은 순종을 배우는 시간들이었음에도 그들은 모든 일에 불평과 불만과 불순종으로 하나님과의 동행을 불평해 한 자들이었다. 하나님의 혹독한 연단은 우리를 살리기 위하신 하나님의 사랑이시다. 그것을 오해하거나 오도하면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이해하거나 깨닫지 못하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되는 경우에는 너무나 많은 에너지가 소모한 후이기 때문에 날마다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것은 우리에게 깊은 의미가 있다. 그들은 광야에서 모두 죽었다.
4. 20세 이하의 백성들은 하나도 낙오없이 가나안에 들어간다. 그들은 광야로 들어오면서 철저히 순종을 배운 자들이다. 하나님과의 광야의 동행길에서 낙오되지 아니하고 같이 걸어가는 자들이 된 것이다. 동행은 순종의 길이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동행이다. 하나님은 그런 동행을 원하시고 기뻐하신다.
에녹에 대하여 그저 하나님과 동행하고 자녀들을 낳고 그리고 하나님이 데려가시므로 보이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에게는 날마다의 기적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아무 사고 없이 아무 특별한 일이 없이 지나가는 하루는 기적이다. 우리는 어떤 어려운 일 힘든 일을 당하는 사건 속에서 그것이 기도대로 풀리거나 제대로 해결된 것을 기적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더 큰 기적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것이 가장 큰 기적이다.
한 흔한 예로 아버지와 아들이 만나기로 하였다. 만나는 장소에서 아들은 아버지에게 말한다. 오다가 교통사고 날 뻔하였는데 하나님이 도우셔서 잘 피하고 왔다고 그것은 기적이라고 하였다. 이에 아버지는 여기오는 길에 아무 일도 없이 무사히 왔다고 말씀하시며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큰 기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두 사람이 말하는 기적 속에 우리는 어느 쪽이 더 큰 은혜와 기적 속에 있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에녹은 365일 동안 하나님의 책망이나 징계를 받을 필요가 없는 자였음을 알 수 있다. 그에게 큰 사건이 없다는 것은 그는 하루하루를 순종 속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한 자였음을 알 수 있다.
동행(同行)
1. 창 6:9"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同行)하였으며,"
하나님께서 물로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가족이 노아와 노아의 가족뿐이다. 성경은 노아를 당대의 의인이요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들의 구원을 노아와 그의 가족을 통하여 볼 수 있다. 하나님과 동행하였을 때에만이 구원이 있고 생명을 보존되며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무는 것을 볼 수 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비웃던 모든 사람들은 지면에서 쓸려 없어짐을 볼 수 있다.
2. 창 22:6"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일 동행(同行)하더니, "
아버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아들과 같이 동행한다. 같이 걸어가면서 아버지 아브라함은 끝까지 순종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아무것도 모르고 동행하는 아들 이삭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한 번의 순종으로 하나님의 믿음의 조상이 될 뿐 아니라 그의 생애가 평탄하였음을 볼 수 있다. 누구와의 동행(同行)이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믿는 자와의 동행과 믿지 않은 자와의 동행(同行)은 끝이 틀림을 잊어서는 안 된다.
3. 출 34:9"이르되 주여 내가 주께 은총을 입었거든 원하건대 주는 우리와 동행(同行)하옵소서 이는 목이 뻣뻣한 백성이니이다 우리의 악과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주의 기업으로 삼으소서."
모세도 하나님과 동행되는 삶의 결과를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그러지 못할 것임을 알고 그는 비록 우리가 악할지라도 죄를 용서하시고 주의 기업으로 삼아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과 끝까지 동행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멀리하고 우상숭배함에도 그들을 돌이키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인내하심은 우리를 살리고 우리을 회복시키시는 은혜의 분이심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4. 눅 24:15"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이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동행(同行)하신다. 그들은 예수에게 예루살렘 사건을 이야기하며 시체가 사라진 것에 대하여 말하며 여자들이 천사가 나타나 주께서 살아나심을 얘기하였다고 하지만 예수가 없으시니 못 미더운 마음으로 상황을 설명하실 때에 주님은 그들이 주님의 부활을 믿지 않은 것에 대해 책망하신다. 그들의 강권으로 주님이 그들과 음식 잡수실 때에 축사하시고 그들에게 주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주님을 알아보게 된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와 동행하신다. 우리가 깨닫지 못할지라도 이미 주님은 우리와 같이 동행하시고 같이 하시고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중심이 주님을 향하기를 순종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라신다.
우리도 주님을 영접한 순간부터 하나님과 동행되는 삶을 사는 자들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은혜에 거하라고 계속 말씀하고 계시다. 지금 우리 눈에 불기둥, 구름기둥이 보이지 않더라고 주님은 우리와 언제나 동행하신다. 그러므로 같이 계신 주님을 우리는 피할 수 없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 모두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이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영과 행실은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있는가 주의 낯을 피하여 숨고 있는가이다. 우리는 숨을 수도 벗어날 수도 없다. 은혜의 주님은 우리가 주의 나라 가기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 여기에 주의 은혜와 사랑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평안하고 즐겁고 기쁜 것이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 우리는 기도할 수 있고 그 기도에 응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