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我眞是苦阿! 誰能救我脫離這取死的身體呢?)
'곤고한(苦)'은 고통, 고난, 죄문제로 인한 근심과 갈등으로 심령이 갈피를 잡지 못할 만큼 고통스러운 상태.
1. 룻1:20"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마라(苦)'는 모질고 쓴, 괴로운, 쓰라림, 슬픔, 괴로움을 가리킨다.
살 소망이 없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살아야 할 이유도 살아가야 할 근거도 없는 지금의 상황을 나오미는 겪고 있다. 나오미는 서나 누우나 먹으나 마시나 고통 속에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유다 베들레헴 사람이었다. 그곳에 흉년이 들어 그녀는 남편과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이르게 된다. 거기서 남편이 죽고 두아들이 장가들고 10년쯤에 두 아들마저도 죽고 만다. 이 십 년 동안 두 아들에게는 자손이 없었다. 이제는 과부 세 사람이 남았다. 나오미는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두 며느리도 놓아주어야 할 것이다. 그녀의 삶 자체가 고통이고 아픔이고 슬픔이었을 것이다. 정말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가져온 재산은 모두 허비하였고, 남편과 아들마저 세상을 등졌고, 이제는 두 며느리도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그녀는 비참한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두 자부 중에 룻을 그녀에게 남겨주셨다. 홀로 떠나지 않고 그녀는 한 며느리와 돌아오게 된다. 룻은 비록 모압여인이었지만 그녀의 신앙고백을 보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6절'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
후의 이야기는 유대관습대로 룻은 보아스의 아내가 되어 나오미를 섬기고 룻의 낳은 아이가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된다. 4장 21-22'살몽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마 1:5'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
하나님은 나오미의 고통에 함께 하셨고, 그녀의 말년에 며느리 룻은 통하여 자손을 잇는 은혜를 받게 하셨다. 우리도 어떠한 환경이나 상황에도 굴복해서는 안된다. 고통이나 아픔이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우리의 마음을 가지고 놀고 있다. 그러나 끝까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잊어서도 버려서도 안된다.
2. 사 38:17"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苦)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히스기야 왕은 병이 들어 곧 죽게 되었을 때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가 유언하라 전한다. 이에 히스기야는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라고 그가 통곡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의 응답이 바로 이사야에게 전해지고 이사야는 도로 궁으로 가 하나님의 응답을 전한다. 그리고 그에게 15년을 더 살 수 있다는 증거로 해의 그림자가 십 도를 물러가게 하는 것으로 하나님이 말씀이 이루어짐을 보여주고 있다. 히스기야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 '내 영혼이 고통을 말미암아 종신토록 방황하리이다. 사람이 사는 것이 이에 있고 내 심령의 생명도 온전히 거기에 있사오니 원하건대 나를 치료하시며 나를 살려주옵소서.' 그리고 본절에서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고 나를 사랑하사 멸망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다고 말하고 있다. 히스기야 왕은 선한 왕이다. 그는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무릎 끊은 지혜의 왕 중의 하나였다. 죽게 되었다고 하였을 때에도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한 일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하며 은혜를 간구하고 있고 이에 하나님은 바로 그 기도에 응답하신다. 그가 한 일은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기도한 것이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찾는 것은 그러한 생활이 이어졌을 때 가능하다. 우리가 당하는 어떤 괴로움이나 어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구하는 자들이 되는 모습을 보시기 위함이고, 이것이 우리가 살 길이기 때문이다.
3. 히 2:9"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苦)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확실하고 명확하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한 대속 주로 오셨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 사흘 만에 부활하사 부활의 즐거움에 참여할 수 있는 기쁨도 허락하셨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의 뒤를 좇아오기를 바라신다.
주님의 부활 승천 이후에 베드로를 포함한 10명의 제자들은 말씀에 근거하여 자신들의 사명을 감당하며 살았다. 나중에 사도 된 바울은 다멕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고 헌신의 생활을 한다. 그는 주옥같은 많은 서신을 남겼고, 그 남긴 서신으로 오늘 우리는 많은 위로와 감사의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바울 조차도 본절에서 그는 이렇게 탄식하고 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바울은 이렇게 탄식하고 있다.
1)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올무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내 생각과 내 행실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만이 우리를 더욱더 말씀에 순종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이나 행동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려가고 원하는 바가 나오지 않는 현실을 말하고 있다.
2) 내가 원하는 바 선을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자신의 모순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말씀을, 기도를 더욱 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가야지 하면서 하루를 뒤돌아 보았을 때 자신의 뜻대로 산 하루를 마감하게 되면 허망하면서 슬픔까지 밀려올 때가 많다. 이렇게 365일이 지나간다.
3)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에서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의 법이 이겨야 함을 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하루를 뒤돌아보며 하나님께 기도할 때 우리는 죄의 법의 노예가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된다 할지라고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하루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25절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나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사도바울은 앞절에서 '나는 곤고한 자인데 누가 나를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라고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그럼에도 그는 바로 하나님께 감사한다. 우리를 위해 대속해 주신 구속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취된 구속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림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다시 반복한다. '나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비록 이러하지만 바울은 몸의 구속 곧 진정한 구원을 기다릴 준비를 갖게 됨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의미를 더 명확하게 하고 있다.
우리는 주님이 없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