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45:3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위대하심을 측량하지 못하리로다.
(耶和華本爲大, 該受大贊美, 基大無法測度.)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이다.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은 인간인 우리로서 크고 위대하심과 그의 능력을 가늠할 수 없다.
수술하는 의사들은 인간의 몸의 오묘함과 신비함을 보고 절대자를 믿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하나하나 이어지는 신체의 비밀은 캐면 캘수록 하나님의 창조의 위대함에 놀랄 뿐임을 고백하는 의사들도 있다.
우리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고 먹는다. 우리몸의 지체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 하나님이 인간을 가장 사랑으로 창조하심을 본다.
아직도 많은 창조물중에 파헤치지 못한 것들도 많다고 한다. 꽃이 피고 지고 생명이 없는 것 같으나 생명을 가진 식물들도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자신의 일에 충성하는 모든 것에 감사할 뿐이다. 특히 외국에 나가보면 과일의 종류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다. 모양도 맛도 그 환경에서 자라 사람에게 기쁨과 몸의 유익을 줄 때에 놀랄 뿐이다. 우리는 곳곳에서 하나님의 창조를 보고 놀라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을 찬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주 만사에 하나님의 손길 닿지 않은 곳이 없음을 본다. 태양이나 달, 별들을 보고 우리는 즐거워한다. 어떻게 글로 그 위대하심을 대신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이 시는 다윗의 시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날마다 영원히 하나님을 송축하리이다라고 극 존칭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고 있다.
'송축 하리이다'는 원어 '바라크'는 '무릎 끓다', '경배하다', '찬양하다'란 뜻으로 곧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무릎 끓고 찬양과 경배를 드림을 의미한다.
위대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다윗은 계속해서 시 공간을 초월하여 어느 시대나 어느 때나 하나님을 찬양하여야 함을 말하고 있다.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
1. 욥 11:7"네가 하나님의 오묘함을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완전히 알겠느냐."
소발의 첫번째 변론 중에 나온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완전히 측량할 수 없다. 그러나 인생 중에 높낮이, 강약의 인생의 고난의 터울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릇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이 살아온 환경과 가지고 있는 지식 혹은 자신의 경험으로 상대를 폄하해서는 특히 기독교인이 그러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모를 때가 많다. 우리 자신도 말씀과 기도 속에 있다고 생각되었으면서도 닥치는 환난이나 고통에 대해 주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가 하나님의 연단에 있는지 자신의 시험에 자신이 빠져 올무에 갇혀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를 이해하고 그가 이 상황을 빨리 극복할 수 있게 같이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여 주는 것이 옳다.
소발의 말처럼 하나님은 하늘보다 높으시고 스올보다 깊으시니 누가 능히 알겠는가? 감사할 것은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고 아바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우리의 축복에 대해 감사할 따름이다.
2. 욥 36:26"하나님은 높으시니 우리가 그를 알 수 없고 그의 햇수를 헤아릴 수 없느니라.
우리는 모두 신앙의 연단에 서 있다. 크든 작든 고통은 아픈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고 그렇게 신앙 안에서 성숙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신다. 그 속에 우리는 고난을 맞이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욥의 고난을 보고 같은 마음으로 숨을 쉴 수 없다. 극도의 고통과 소외감에서도 성경은 말한다. 생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뜻을 묻고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되 우리 편에서는 이러한 연단 속에서도 어떻게 하나님을 의뢰하고 신뢰하여야 함을 우리가 지켜야 하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체념하여서는 안 된다. 자포자기도 안된다. 오직 십자가만을 바라보는 믿음의 자세야 말로 성도들이 가져야 할 본분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3. 사 40:28"너는 알지 못하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困倦)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곤비하지(困倦)' '숨차다'는 뜻에서 '기진맥진하다', '나약하다'가 파생. 이는 하나님이 능력의 한계가 없는 분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26절에 이렇게 되어 있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것을 믿을 진대 무엇이 두려운가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남이 믿으니깐 나도 믿어야하나라는 생각이라면 다시 한번 나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존재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고 믿고 확실한 일에 거하여야 한다.
4. 시 147:5"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하나님의 구원과 통치의 은총을 대자연을 통하여 섬세하고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주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주께 감사하고 주를 송축하고 주께 감사한다.
5. 엡 3:19"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닫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자녀는 아버지를 닮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충만하심에 거하듯이 우리도 믿음과 사랑과 말씀에 온전히 거하고 영적 충만함에 거하여야 한다.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