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5:43-48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仇敵)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逼迫)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日頭)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雨)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完全)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完全).
본문 말씀은 네 원수를 사랑하며 기도하라라고 되어있다. 이렇게 하여야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라고 말씀하고 계시다. 우리는 우리을 적대시 한 자에 대해 원망과 불평을 토로할 때가 있다. 왜 그러지 말라고 하셨을까? 이는 원망과 불평을 나타낸 자가 더 힘든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어떤 부부가 이혼을 하였다. 보통 상처는 같이 받는 걸로 알고 있다. 시간이 흘러 남자는 재혼을 해서 잘 살고 있고 여자는 힘들게 사는데 이는 받은 상처가 아물지 않으므로 여자는 남편을 저주하다시피 하며 세월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 그 저주가 남편 쪽에서 받지 않는다면 그 저주는 자신에게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자신에게 그런 상처를 주었어도 저주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기도해 줌으로 자신도 주 안에서 상처가 치유되고 기도가 상대편이 받지 않는 다면 그 기도가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레 19:17-18"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네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 그러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는 사람의 마음속에 미움과 시기 질투 증오는 모든 죄악의 일차적인 동기이다.
마 18:35"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롬 13:8-10 사도 바울도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라고 사랑을 율법의 핵심사상으로 교훈하고 있다.
온전(完全)
목적, 목표, 목적을 도달하는데 있어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상태. 이는 존재론적으로 볼 때 온전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니 그를 믿는 우리는 모든 것을 바쳐 그분을 닮아가야 함을 보여 주고 있다.
1) 삼하 22:26"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完全) 보이시며,"(시 18:25)
'타맘'(완수하다. 정직하다)에서 유래. 하나님 앞에서 완전할 수는 없으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정해 주신다.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사랑을 하는 자에게는 주께서도 그를 자비하심으로 대하시고, 자신을 온갖 세속의 더러움과 죄로부터 분리시켜, 날마다 의로움과 순수함을 추구하는 '거룩한 자'를 의미한다.
2) 롬 13:8"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完全)."
사랑이 강조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사람들을 사랑하사 우리의 죄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사랑을 온전케 한 사건이다. 그러므로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으므로 우리 또한 세상의 사람들에게 빚진 자이다. 그 사랑으로 주님을 전하는 것 그런 사랑으로 이웃을 대할 때에 율법을 다 이룬 것이라 말씀하고 계시다.
3) 고전 13:10"온전한(完全)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러나 은사는 일시적임으로 온전한 사랑이 오면 부분적으로 행하던 것이 폐하여 진다.
4) 히 2:10"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完全) 하심이 합당하도다."
'아들'은 '양자', '왕권'의 뜻. 즉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반열에 참여케 된 성도들을 의미한다.
'창시자'는 '시작'을 의미하는 '아르케'에서 파생된 말로서 '설립자', '지도자'를 가리킨다.
'온전하게'는 예수의 인격적 완전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곧 그리스도는 죽음의 고난을 통하여 대제사장의 직분을 온전히 성취하셔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를 말한다. 구약에서 예언하신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의 보혈로 고난을 통하여 구약의 예언을 온전케 하시며 구원받을 모든 후사의 맏아들 되신 주님을 믿는 자에게 주시는 완전한 조건을 구비하셨다.
5) 히 5:8-9"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完全)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
주님은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다. 아들이심에도 순종하셨듯이 우리에게도 영원한 나라에 가기 위해서는 순종하여야 함을 말씀하고 계시다.
6) 히 10:1"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完全) 할 수 없느니라."
'좋은 일(美事)'은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진 구원을 뜻하며 구약 제사에 대한 그리스도의 제사의 완전성을 강조한 말이다.
'온전하게'는 이는 도덕적으로 온전케 한다는 뜻이 아니라 예배드리는 자로 하여금 더 이상 죄의식을 갖지 않게 하는 그리스도의 제사의 효과를 나타내는 용어이다.
7) 히 10:14"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完全) 하셨느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을 가리킨다. 영원히 온전케 하심은 주님이 자신을 제물로 드린 제사의 영원한 결과를 시사한다.
8) 요일 2:5"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完全)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말씀을 지키는 자는 말씀에 순종하고 그 말씀을 지키려고 애쓰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성숙되고 온전하여지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내주 하심을 알게 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끌고 들어가는 여호수아에게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고 권고하셨듯이 오늘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다.
온전하여진다는 것은 주님이 우리 안에 내주 하시고 우리는 그 말씀을 순종함으로 온전한 주님을 닮아가는 과정이라고 본다. 그래서 달음질하는 자는 주의 푯대를 향하여 노력하며 수고하며 달려가는 것이다. 오직 우리에게 상주시는 주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그런 마음의 시작은 결과를 향하여 달려가는 성도들의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주의 곁에 가기 위해 수고하는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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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요일 4:12"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完全) 이루어지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거할때 성도들의 모든 사랑의 행위에 근거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자신들 안에 존재하며 하나님이 내주 하심을 드러내는 증거이다.
10) 요일 4:17"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完全)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성경에서 안 이루어진 것은 주님의 재림이다. 구약의 예언의 모든 말씀은 다 신약에서 이루어졌지만 오직 재림 하나만이 남았다. 그때는 누구든 주님 앞에 설 것이다. 시험을 준비한 학생은 시험에 두려움이 없다. 준비 안 한 학생은 결과를 알기에 두려운 것이다. 그와 같이 성도들이 날마다 삶에서 말씀을 온전히 지키고 그런 삶을 살았다면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담대함을 가질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과 순종의 생활로 담대함을 가질 수 있음을 알고 주님이 그러하셨듯이 우리도 그러하여함을 뜻한다.
온전이라는 단어를 접하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구약의 예언에 대한 완성을 말한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위하여 주님께서 단번에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사건은 기독교 정신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랑의 사건이다. 주님의 피의 보혈로 우리는 나음을 얻었다. 이제는 우리도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주의 뒤를 좇아가야 함을 성경은 끊임없이 얘기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도 주 안에서 온전하여 지는 길이다.